카지노와 사람을 위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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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카지노와 사람을 위한 경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8.

외지인들과의 대화에 앞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디언 말로 한참 주문을 외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1년 반 전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애나 푸에블로의 타마야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만난 젊은 부(副)족장 조지프 피나를 만났을 때 든 느낌은 우리에 갇힌 사자 같다는 것이었다.

카지노 얘기를 꺼냈다. 타마야 부족이 1983년 뉴멕시코주와 협정을 맺어 산타아나에 카지노를 만들기로 결정할 때 마을의 의견은 나뉘었다고 했다. 반대한 쪽은 마을 원로들이었다. 당장 수입원은 되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며 외부 문물의 유입 속에 문화를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외지에서 교육받고 생활하며 바깥 문물을 맛본 데다, 높은 실업률과 빈곤을 심각하게 여기던 젊은이들은 마을 경제발전을 위해 카지노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카지노에서 나오는 소득의 상당 부분을 부족민들의 주택과 교육, 보건 등에 쓰기로 하고 카지노 건설을 허용하기로 했다. 피나는 “그 결정은 지금까지 성공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부족들은 외지인들이 와서 쓴 돈으로 경제적 자립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역설적으로 인디언 마을을 보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몇몇 조사에서 카지노가 부족민들에게 미친 경제적 효과는 대체로 좋게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40대 지도자가 말끝은 흐린 것은 종교와 언어를 얘기할 때였다. “종교와 언어는 영혼이고 우리를 묶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부족 언어를 쓸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정말 예전 같은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문제가 뒤따라 나왔다.

뉴욕주의 소도시 타이어에는 30년 전 산타애나의 타마야 부족이 했던 것과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주가 작년 말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도록 법을 고친 뒤 여기저기서 카지노 건설을 놓고 찬반이 갈라졌다. 타이어는 아미쉬 부족이 반대 진영을 이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미쉬인은 17세기 스위스나 독일에서 이민 온 보수적 기독교도의 후예로 성경 가르침에 따라 노동을 강조하고 소박한 전통 생활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동안 아마쉬인들은 이웃들에게 신선한 농작물을 공급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 좋은 이웃이었지만 카지노 이슈가 부상한 뒤 서로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됐다.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 벨렘에서 28일 인디언들이 원주민 권리 관련 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아미쉬 농민인 대니얼 슈워츠 주교는 카지노가 가져올 교통량, 소음, 밝은 빛, 그리고 “사람들의 도덕에 대한 위협”을 우려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아미쉬인들은 그간 언론 접촉도 꺼리고, 정치 참여도 하지 않는 등 외부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지만 이번 일은 반드시 막아내겠다며 공청회장이나 법정에 나가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비(非)아미쉬 읍장인 로널드 맥그리비는 카지노가 가져올 지역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를 강조하며 지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슬롯머신 수천개와 고급호텔방 200여개로 이뤄진 4억2500만달러 규모의 이 사업이 18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속도가 더 빨라지고, 세율이 낮아질 것이며, 수질도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카지노 추진파들은 아미쉬인들에게 카지노 옆에 농작물, 공예품 판매 코너를 무상으로 마련해주겠다며 설득하고 있지만 아미쉬는 사양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카지노 건설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구 950명의 이 마을에 1800개의 일자리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 여파로 올 들어 애틀랜틱시티 등의 대형 카지노들이 하나둘 문 닫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카지노에 돈을 쓰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 데나 음식을 사는 데 돈을 덜 쓰려 할 것이다. 그로인해 그들은 돈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이다.” 슈워츠 주교의 이 말에 무엇이 정말 사람을 위한 경제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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