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일본 초계기 도발과 그 이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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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일본 초계기 도발과 그 이면의 의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 28.

일본의 초계기 도발이 상궤를 넘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처음부터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응의 수준도 낮추었다. 그간 우리군과 일본 자위대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등 현안에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많이 고려한 듯 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계속된 도발로 우리 정부와 군의 침착한 대응은 의미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첫번째 사건을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 세 번의 도발은 명백하게 의도적이다.

 

문제는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을 한 것은 그 뒤에 벌어질 수 있는 군사적인 충돌까지 고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군은 일본의 계속되는 도발이 군사적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 군이 사격통제 레이다를 가동했다면 일본은 이를 빌미로 우리 해군함정을 공격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후 세 번의 도발에 우리 함정을 무방비로 노출시킨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사진 가운데)이 지난 26일 해군 초계기 조종사용 가죽점퍼를 입고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정착 중인 세종대왕함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강력한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기본적으로 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할 일이었다. 이번 도발이 징용배상이나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최근의 불편한 한일 관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던, 아베 정권이 국내 정치적 지지를 올리기 위한 것이던 간에 모두 정치적 문제이지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우리 해군의 사격통제 레이다 주파수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을 듯 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한 주파수를 공개한다면 누가 이것을 믿을 것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일본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인 방법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일본이 군사 실무급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진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는, 즉각 외교 당국이 개입하여 한일 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사건의 본질을 밝히고 이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했다. 지금처럼 일본 방위성 장관이 초계기 부대를 방문해서 격려하고, 우리 국방장관이 해군 작전사령부를 방문하여 강력 대응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다. 정말 강력 대응해서 일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만일 교전이 벌어져서 우리 장병들의 인명 손실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이 군사적인 충돌로 나가야 할 정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일본의 초계기 도발로 인해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한국군의 평시작전권 행사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제까지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이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군의 평시 작전권도 유엔사령부의 정전시 교전규칙에 따르게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미측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군이 유엔사의 정전시 교전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만일 한일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면 우리 군은 유엔사의 정전시 교전규칙에 얽매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그럴 경우 한국 공군과 해군은 독자적 교전규칙을 수립해서 적용해야 한다. 당연히 평시작전권의 행사를 위한 사령부의 역할과 성격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의 공세적 행동까지 계속되는 상황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에 관한 문제이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한국과 일본이 직접적인 동맹을 맺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의 동맹구조 때문에 한·미·일은 잠정적인 군사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 군사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그동안 유지되어 오던 동북아 지역의 한미일 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다. 한·일 간의 갈등이 역사문제일 경우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정책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일 간 군사적인 충돌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라면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한·일 간의 관계에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일본은 너무 나가버렸다.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잘못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이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을 분명하게 깨우쳐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설 예비역 준장·전 육군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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