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자외교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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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 다자외교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문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24.

박근혜 대통령이 7박10일간의 다자외교를 마치고 23일 귀국했다. 여러 사안이 논의됐지만, 이번 다자회의는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문제,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 일본과 중국의 첨예한 경쟁으로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와 관련해 한국 언론이 그나마 주목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11월21일에 열린 아세안+3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담은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 보고서가 행동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출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22일에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상들이 12월31일자로 아세안 공동체를 공식 출범시키겠다고 ‘2015 쿠알라룸푸르 선언’에 서명한 점이다.

아세안이 중국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니 경제 분야에 중점을 둔 아세안공동체 출범에 우리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아세안이 한·중·일 3국과 협력해 지역 공동체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이 또한 반대할 이유가 없다.

2005년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공식 제기된 동아시아 공동체는 앞으로 협력해 만들어갈 사안이니, 한국으로서는 경제적 이득만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안을 주목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15년 들어 한국에 거주하는 170만여명의 외국인 가운데 10명 중 8명이 동아시아 지역 출신자이다.

한국 사회 내부가 동아시아를 특별히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 분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좁게는 동북아시아, 넓게는 동아시아의 분립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베트남전쟁 참전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은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이면서 다자간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이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_ 연합뉴스_연합뉴스


그러나 또 다른 현실이 새로운 동아시아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세계적인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해체됐지만, 한반도에서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전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전쟁 이후 볼 수 없었던 충돌이 최근 들어 자주 일어날 만큼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된 때도 있었다.

미국은 2010년경부터 동아시아에서 재균형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과 새로운 전략관계를 설정하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두 나라 사이에 경쟁과 담합이 심화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치는 미국과 중국이란 G2 사이의 경쟁을 상징한다. 한반도에서 분단 체제가 지속되고 대만이 독립국가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은 미·중의 담합구조를 전제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미·중 사이의 치열한 경합은 결국 동아시아에 다자 질서를 만드는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더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활동이 강화됨으로써 환태평양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호주가 동아시아 공동체 설립을 내세운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가함으로써 동아시아인이라 생각하지도 않는 국민이 구성원으로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군사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만들어 북방지역의 안전을 보장했다. 여기에 동아시아 내부의 역사갈등과 영토갈등이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높이면서 다자 협력의 안정성을 가로막고 있다.

2015년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다자 질서를 만들려는 흐름과 이를 방해하는 흐름이 교차하고 있다. 분단 고착과 갈등 격화는 후자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반면에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하려는 노력은 전자의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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