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대 중국 대학생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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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신시대 중국 대학생 소송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7. 4.

지난해 6월 중국 대입시험을 끝낸 리모양은 베이징에서 톈진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려고 예약한 침대칸은 ‘간접흡연 고문칸’으로 변했다. 객실과 객실 사이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승객뿐 아니라 열차 승무원들이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열차 객실에는 어린이와 임신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흡연을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국의 고속철도에서는 흡연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하고 추가 적발되면 고속철 영구 탑승 금지 조치를 하는 등 엄격히 금연 정책을 실시한다. 그러나 일반 열차는 여전히 흡연구역이 존재한다. 냉방 시스템이 에어컨으로 바뀌면서 환기는 어려워졌는데 흡연구역은 철거되지 않아 거대한 간접흡연 구역으로 변한 것이 문제다.

 

리양은 열차 안전 규정을 찾아 국가철로국과 베이징시, 톈진시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관할 범위가 아니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참다못해 자신이 탔던 K1301 열차를 운행하는 하얼빈 철도그룹에 베이징역과 톈진역 승강장, 해당 기차 내의 흡연구역을 폐지하라는 소송을 냈다. 또 기차표와 마스크 구입비용, 변호사 수임료와 정신적 피해보상도 요구했다. 그가 소송에서 제시한 정신적 피해보상액은 1위안(약 168원)뿐이었다. 1년간의 소송 끝에 지난주 법원은 하얼빈 철도그룹에 30일 내에 해당 열차 내 흡연구역과 재떨이를 모두 철거하고 금연을 홍보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중국 내 공공장소 흡연을 요구한 첫 소송이자 승소 사례다.

 

중국이 대대적인 금연 캠페인으로 3억5000만명에 달하는 흡연 인구를 압박해왔지만 중국인들의 담배 소비 증가 추세를 꺾지 못했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도 금연 표지판 아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리양이 탔던 K1301열차에 한정돼 있지만 향후 중국 열차 전체로 금연구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판결에서 간접흡연의 피해를 인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주도한 것은 갓 대학에 입학한 19세 청년이다.

 

1990년대 태어난 중국 대학생들이 중국 사회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동력은 소송이다.

 

화둥정법대의 학생 4명은 상하이 번호판 입찰에 내는 수수료 100위안(약 1만6800원)의 합법성 문제를 제기했다. ‘하늘의 별 따기’인 상하이 차량 번호판을 친·인척까지 동원해 여러 차례 신청하지만 수년간 번호판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당국에서 수수료만 챙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산시성의 한 대학생은 베이징의 한 교육기업을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행정 보조를 뽑는 취업 공고에 대상을 ‘남성’으로 국한한 것은 중국 법이 보장한 평등권과 취업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송을 통해 시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언론과 집회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 같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법 수정도 큰 반발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그렇다고 중국 대학생들의 변화 시도가 꺾인 것은 아니다. 일반 열차 금연 소송을 이끈 리양은 학교 수업 때문에 법정에 나오지 못했다. 판결이 끝난 후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부처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미력이나마 다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1979년에 형법이 처음 제정됐을 정도로 법치의 역사가 짧다. 시진핑 주석이 의법치국을 주창하며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고 법률 보완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의법치국이 장기 집권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신시대의 중국 대학생들이 오히려 법을 내세워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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