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의 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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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한한의 독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2.

“당신은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었지만 동년배 친구들은 이제 당신을 버렸다.”

작가 겸 감독으로 활동하는 중국의 한한이 모바이크 창업자 후웨이웨이에게 독설을 했다. 두 사람은 1982년 동갑이다. 한한의 독설은 중국 최대 외식배달서비스 업체인 메이퇀이 모바이크를 약 4조원에 인수하기로 발표한 직후 나왔다.

 

후웨이웨이는 중국 직장인들에겐 꿈이자 희망 같은 존재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후 11년간 기자로 일했다. 창업이나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3년 전 모바이크를 창립했다. 자전거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GPS 칩이 내장된 자전거를 특수 제작해 실시간 수요와 동선을 파악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로 업계를 빠르게 장악했다. 자전거 1000대로 시작한 사업은 현재 900만대로 불어났다. 중국을 포함해 15개 국가, 200여개 도시에 진출했다.

 

‘대중창업·만중창신(大衆創業·萬衆創新).’ ‘많은 사람의 무리가 창업하고 창조와 혁신에 임하자’고 나선 중국에서는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창업은 시작도 힘들지만 버티기는 더 힘들고,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모바이크도 올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용자들의 보증금, 금융기관 대출 등으로 부채 규모가 1조원을 넘었다. 여기에 공유 자전거 이용 건수가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고민이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매각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매년 7% 가까운 경제 성장을 하며 무섭게 변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가 있다. 상무부가 노포로 공식 인증한 ‘중화노자호’는 1128개에 달한다. 그러나 전통을 유지하는 일도 고난이 따른다. 현재까지도 그럭저럭 잘나가는 노포는 3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노포의 주인들은 자신의 점포가 상업적인 가치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도전에 맞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 단오절에 먹는 쭝즈는 찹쌀을 삼각형 형태로 대나무 잎에 싸서 찐 중국판 삼각 김밥이다. 저장의 노포인 우팡자이는 쭝즈에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방패 이미지를 넣었다. 휴대전화로 주문부터 결제까지 모두 해결하는 무인 식당도 만들었다. 100년 된 가게라곤 믿기 힘들다. 1931년 탄생한 바이취에링은 ‘중국판 박가분’이다. 할머니들의 화장품으로 치부되던 이 화장품은 지난해 ‘1931’이라는 광고 사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통 치파오를 입은 여인의 그림과 함께 ‘시간을 죽여버린다’는 강한 문구를 넣었다. 오래된 이미지를 정면 돌파하면서 10대, 20대 고객을 끌어들였다. 1887년 개업한 차 전문점 우위타이(吳裕太)는 ‘올드 우(吳)가 젊은 우(吳)’로 변했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변화에 나섰다. 재스민차를 세련된 중국식 한지와 종이 노끈으로 포장해주는 등 노력으로 35세 이하의 고객 비중이 70%를 차지한다.

 

윈난의 차 기업인 다이그룹은 스타벅스 같은 보이차 카페를 만들었다. 북유럽식 인테리어에 편안한 소파와 조명을 설치했다. 주 품목은 보이차지만 티라미수 같은 케이크도 판다. 아이폰에 맥북을 쓰는 신세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일한다. 노포들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한한은 “창업은 벼락부자와 동의어가 아니며 좌절과 실패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나는 구사일생이 아니라 9999번 죽을 뻔하나 한 번 사는 게 창업이라고도 했다. 겨우 30대 중반에 부동산 수입으로 시간을 보낼 셈이냐고 되묻는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 칼 같은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 기업가 정신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명확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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