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학교, 두 개의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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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하나의 학교, 두 개의 기숙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7. 25.

우시(無錫) 직업기술대학교의 기숙사에 살고 있는 400여명의 학생들은 이달 초 학교 측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퇴거 명령을 받았다. 일주일 내로 기숙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현재의 기숙사는 재작년에 지어진 최신식이지만 이사 가는 곳의 시설은 매우 낙후됐다. 심야에는 온수가 공급되지 않아 샤워하기도 힘들다.

 

잘 지내고 있던 기숙사를 놔두고 후진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원래 살던 기숙사가 유학생 기숙사로 바뀐다는 것이다. 당초 6인실이었으나 2인실로 개조해 더 호화롭게 만들고 유학생들을 받겠다는 학교 방침에 학생들은 폭발했다. “못 나가겠다”는 학생들과 “당장 나가라”는 교직원 측이 충돌했다.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너희 것이 아니라 학교 것이니 당장 이사 가라”고 고압적으로 소리치는 교직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분노는 전국으로 번졌다.

 

중국 대부분의 대학들은 유학생 기숙사를 분리 운영하고 있다. 보통 6인실이지만 유학생 기숙사는 1~2인실로 구성돼 있다. 유학생 기숙사 가격도 몇 배나 비싸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래왔다. 그런데 최근 ‘하나의 학교, 두 개의 기숙사’ 문제가 여기저기서 동시 폭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시안석유대학 대학원생 기숙사 건물이 갑자기 정전이 됐다. 마침 논문을 쓰고 있던 한 학생은 저장되지 않은 대부분의 내용을 날렸다고 했다. 학교 측은 정전이 시설 정비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유학생 기숙사는 전기가 정상적으로 공급돼 에어컨 냉방까지 됐다. 중국 대학원생 기숙사는 선풍기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들은 명백한 차별 대우라고 항의했다. 산둥성의 한 대학은 도서관에 교수, 유학생 전용 열람실을 따로 설치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유학생들이 주로 쓰는 건물 경비원이 전동차 배터리 충전을 하던 중국 학생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중국 학생은 충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학교 측이 진화에 나섰다.

 

2017년 기준으로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 국적 학생은 49만명이다. 아시아 최대다. 당초 다른 기숙사를 제공한 것은 유학생 안전 보장과 효율적 관리를 위한 학교 측의 방침 때문이었다. 톈안먼 사태 직후 중국 대학에서 유학생들의 동태는 철저한 감시 대상이었다. 유학생 기숙사는 점등 제한 시간이 있는 중국 학생 기숙사와 달리 24시간 전기와 온수가 제공됐다. 유학생들에게는 몇 배 비싼 기숙사비를 받았고 이것이 중국 대학의 든든한 수입원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학교에서 자국 학생과 외국 학생을 따로 생활하게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방침이다. 중국 학생도 유학생도 기숙사 선택의 자유가 없다. 중국 대학생들은 기숙사 밖에서 거주하는 것이 대체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 더 높다. 유학생들 입장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과 따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납득하기 힘들다. 자국에서 역차별 받는 중국 학생들의 불만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신학기가 되면 갈등은 더 선명하게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80~1990년대 외국인 전용 화폐인 외화교환권을 사용했다. 고궁 등 입장권 가격도 외국인에게는 따로 책정하는 2중 정책을 썼다가 이제는 사라졌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대학 내 내·외국인 차별도 개선돼야 옳다.

 

우시 직업기술대학은 기숙사를 옮기지 않으면 학칙을 어긴 것으로 간주해 벌점을 매기고 졸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학생들은 이미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다. 학교 측의 억지 행정으로 애먼 유학생들이 화살을 맞을 않을지 우려된다.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피해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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