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혁명, 프랑스의 ‘위선’ 들통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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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아랍혁명, 프랑스의 ‘위선’ 들통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3. 11.

혁명은 민중들이 권력자를 내쫓고 그 자의 곳간을 터는 일로 시작된다. 그 속엔 금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재권력이 다수를 지배하느라 감춰두고 왜곡해왔던 진실들도 함께 숨겨져 있다. 권위와 무력, 거짓으로 유지되어 온 체제는 그 순간, 발가벗고 허물어진다. 재미있는 일은, 아랍국가에서 혁명이 성공할 때마다 프랑스 정가의 비밀 곳간이 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벤 알리가 튀니지를 탈출하기 직전까지, 경찰병력을 튀니지에 파견하여 독재권력을 옹호할 것을 건의했던 외무부 장관 미셸 알리오 마리는 혁명이 진행 중인 튀니지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걸로 알려져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다.

 
“그... 그럴까요?” 도착했던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사업가, 벤 알리의 절친이자 독재권력의 수호자인 아지즈 밀드가 자신의 전용기를 타라고 제안하기에, 그의 친절을 받아들여 휴가지로 향했을 뿐, 권력을 남용한 건 없다고 둘러대던 그녀. 며칠 뒤, 이 여행은 94세, 92세에 이르는 그녀의 부모가 아지즈 밀드 소유의 부동산업체를 사들이는 비즈니스 여행이었고, 그 자가 공항에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튀니지 벤 알리 대통령 (경향DB)

연로하신 부모님이 구입한 대규모의 부동산은 실질적으로 그녀 소유가 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붕괴 직전의 튀니지 정권으로부터 받은 대가성일 수 있다는 추측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튀니지 경찰병력 파견 발언이야말로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는 사건이다. 신문 지상에서 그녀의 코는 점점 더 길게 그려지고, 야당은 강하게 그녀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총리 피용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버젓이 이집트 무바라크가 제공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그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머물면서 개인 휴가를 즐겼다.

아랍국가의 부패한 독재권력들과 프랑스 정가가 오랫동안 맺어온 질척한 밀월관계가, 혁명이 거듭될 때마다, 한꺼풀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형국이다. 조마조마해하며 불똥이 튈까봐 염려하고 있는 건 사회당 쪽 인사들도 마찬가지. 사회당 대선후보로 점쳐지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은 2년 전, “튀니지야말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이상적인 경제체제를 갖춘 나라”라며 벤 알리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현재 반독재 시위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알제리, 그리고 그 바로 옆 나라 모로코에서도 혁명이 성공한다면, 프랑스 정가에 미칠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좌우 정치인은 물론 지식인·예술가·언론인들까지 프랑스 지배계급들이 나른한 몸과 마음을 축여오던, 정서적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제국주의는 사라지고 식민지는 청산되었으나, 프랑스인들이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 벌여온 제국주의적 관습들은 이제 이들 나라에서의 혁명과 함께 제거되어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르몽드는 지난주 아랍세계에서 이어지는 혁명의 물결에,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지나치게 침묵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독재를 청산해 낸 아랍세계가 단결하여 반 이스라엘 전선을 확고하게 그을 것이며, 자신들을 보위해주던 프랑스 정권을 향해서도 날선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들에게 즉각적인 혁명에 대한 환호를 주저하게 한다고 르몽드는 지적한다.

왕의 목을 잘라냈던, 혁명의 원조국가 프랑스. 그러나 그걸로만 계속 장사를 해먹기엔, 오늘날까지 털어내지 못한 제국주의의 먼지가 너무 두껍다. 그리고 혁명은 힘이 세다. 심지어는 옆 나라에서 굴러다니는 위선의 먼지까지 털어준다. 더 많은 혁명이, 지구상에 들러붙은 위선의 먼지를 다 털어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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