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고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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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분노하고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 17.

2011년이 열리고 나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분노하라(Indignez Vous!)>다. 가장 많이 지면에 등장한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다. 올해 그는 한국 나이로 95세에 이른다.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전후에는 외교관으로, 말짱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한 세기를 살아온 이 다복한 남자는 단 13페이지의 짧은 책을 써서 3개월 만에 60만부를 팔아 치운 경이로운 사회 현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스테판 에셀과 그의 저서 <분노하라>
                                                                                출처: www.lavie.fr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이던 30여분 남짓, <분노하라>를 급히 사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목격하면서 범상치 않은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조용히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년 들어 프랑스의 모든 언론들이 <분노하라> 특집을 앞다투어 다루면서 바야흐로 2011년은 분노의 시대로 정의되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입속에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적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파괴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를 관철시킨 사르코지 정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난 시대에 자신들이 건설해 온 사회체제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바로 ‘분노’다.

그러나 차마 사람들이 그것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그 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어린 아이가 그의 벗은 몸을 거침없이 비웃던 것처럼, 한 세기를 살아낸,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이 당당한 노인이 거리낌없이 말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이 당신들의 분노를 끄집어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를 구해낼 때라고.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국민연금과 사회보장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사회체제는 전후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간 레지스탕스 정신의 산물이라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사회를 지켜야 하며 이민자를 축출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며, 언론은 한 줌 권력집단에 장악당해 있는 이런 사회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했던 그 사회가 아니라고.

과거 그가 나치에 저항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사회적 덕목들을 훼손시키는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더 많은 정의와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 에콜노말에 입학했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독일군에게 잡혀있다가 탈출한다. 전후에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외교관의 안락한 삶은 그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보수적인 삶으로 주저앉히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하고, 인권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며,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중재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그를 분노케 하고, 열정을 부추기는 사건에 동참하면서 역사의 한 흐름을 지켜왔다.

                                                                 스테판 에셀
                                                      출처: AP Photo/ Francois Mori

우리에게도 점령당했던 역사와 그 치욕에 항거하여 몸을 불사른 용맹스러운 레지스탕스(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과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고, 그들의 진취적인 정신은 해방공간을 차지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 이승만이 집권한 해방 후 이 땅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친일세력들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들이 벌여놓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는 청년들의 분노를 샀고,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거리로 나섰다.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마주한 청년들은, 눈 멀고 귀 먹은 이 식물 대통령에게 이 나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주주의 말살 행위를 고한다. 이 때 이승만은 “나라에 이런 부정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해방 이후 잘못 끼워진 단추의 비극은 지금까지 우리를 불행한 역사의 질곡에 붙들어 매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분노하고, 행동하는 청년들의 열정이었다. 그 분노와 행동은 눈먼 자에게도 한줄기 정의를 일깨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분노할 일은 넘치고, 행동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2011년의 초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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