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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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아버지와 정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2. 17.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유력후보가 있기에 누구도 섣불리 도전장을 내밀려고 하지 않는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은 스무명 가까이 되는 후보들이 벌써부터 백가쟁명을 벌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력한 두 후보를 꼽자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62)와 랜드 폴 켄터키주 상원의원(52)이다. 두 사람은 모두 2세 정치인이다.

젭 부시는 대권 도전을 시사한 뒤 지난달 자동차 판매업협회에서 한 첫 대중연설에서 “내 아버지”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그는 아버지 부시가 자신의 정치인 롤모델이라며 특히 그의 외교정책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형 부시에 대해서는 퇴임 후 그림을 그리는 것만 얘기했다. 젭 부시는 자신의 정치자금 모금법인인 정치활동위원회(PAC) 웹사이트에 올린 첫 게시글에서도 아버지만 거명하고 형에 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탈냉전 후 현실주의 외교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아버지와 달리 형은 일방주의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이다. 물론 아들에게는 형제보다 아버지가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출처 : 경향DB)


병상에 누운 아흔살 아버지 부시가 대권에 도전하는 젭 부시에게 순자산으로 여겨지는 반면 랜드 폴에게 아버지는 좀 복잡한 존재다. 그의 아버지 론 폴 전 하원의원(79)은 공화당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 세 번이나 나가서 전국적 지명도가 있지만, 그의 지향은 극단적으로 치부되며 보수 진영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론 폴은 한국 보수정치인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성향인 자유주의자이다.

론 폴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국가의 복지지출 확대에 반대한다. 그의 작은 정부 철학은 군사비 지출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공화당 주류와 갈라진다. 그는 탈냉전 이후 서방이 러시아를 능멸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블라디미르 푸틴이 득세한다고 본다. 론 폴은 ‘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표를 던진 몇 되지 않는 공화당 의원이었다. 또 자기 지역구였던 텍사스주가 미국 연방에서 분리독립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미국의 독립혁명도 결국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이었다는 것이다. 의사 출신인 론 폴은 국가가 개인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해서는 안된다고도 주장한다. 이쯤 되면 아버지의 철학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아들에게는 부담이 된다. 하지만 랜드 폴은 여전히 정치철학의 상당 부분을 아버지에게 빚지고 있는 것 같고, 아버지는 지금도 자기 소신대로 왕성한 대외활동을 한다.

‘이럴 때 아버지가 계시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제는 고인이 된지 꽤 되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도 아버지 하면,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한번쯤 상의해보고 싶은 분이다. 세월이 흘러 나 자신이 아버지가 된 뒤에는 이따금 더 그리울 때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 좋으나 싫으나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자랐고, 홀로 선 뒤에도 무의식 중에 그 영향을 받으며 산다. 영화 <국제시장>이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된다.

특히나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 자식들은 장성한 뒤에도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캥거루족’이 많다. 그런 경우 아버지는 우리 삶에 더 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경제적 유산뿐만 아니라 정치적 유산까지 있는 경우라면 더 그럴 것이다. 아버지(심지어 할아버지까지)의 후광에 기대거나 아직도 아버지를 롤모델로 둔 지도자들은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많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우파 정치인들이고 어떠한 비전보다는 ‘좋았던 옛날’에 대한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정치적 생명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국가 건설이 내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이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망을 품은 미국의 두 보수정치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지 않을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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