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속도의 비대칭이 한·미 공조 균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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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아침을 열며]속도의 비대칭이 한·미 공조 균열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0. 22.

남북관계와 북한 비핵화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 북한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을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이건 우문이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무엇이 먼저인가. 북·미 비핵화 협상은 나아갈 듯하면서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남북관계 개선 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작금의 상황에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선행 의지가 분명하다.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고 밝힌 이후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남북은 9월 평양 정상회담, 10월 고위급회담에서 군사 분야와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에 합의했고 후속 일정도 줄줄이 잡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에게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지하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현실화할 경우 남북관계 개선 작업은 절정으로 치달을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와 평화구축이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와 비핵화가 연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핵화 협상은 느린데 남북관계만 치고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는 만큼만 남북관계가 뒤따라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도 두 사안이 선순환적 관계라고 본다. 선순환적 관계는 발전성을 내포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난 6월에 만나고, 또 한 번의 만남이 준비되는 과정 모두 남북정상회담이 디딤돌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 정상의 과감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북·미 정상이 만났을까 싶고, 그 만남이 있었기에 남북관계는 한발 더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협상을 둘러싼 속도의 비대칭성 자체를 한·미 공조 균열의 징표로 볼 수 없다. 어디까지가 공조이고, 어디서부터 균열이라고 선을 긋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가려는 목표와 방향이 일치하느냐다. 어느 한쪽이 뒤처지면 동행자가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혼자서 걷더라도 어느 한 발이 먼저 옮겨져야 나머지 발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두 발을 동시에 콩콩 뛰어서 이동한다면 오래가기 힘들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한·미 공조는 북한 문제에 관해선 튼튼했다. 그것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당시 한·미 정부 모두 압박과 제재가 유일한 대북정책이었다. 현상 유지는커녕 이 시기에 남북관계는 거덜 나고 북핵 문제는 깊어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라고 불렸는데 무기력·무능력·무대응의 다른 이름이었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접근법이 똑같을 수 없다. 남북은 248㎞의 비무장지대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미국 본토는 한반도에서 1만㎞ 떨어져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성공할 때까지는 현실적 위협도 아니었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한반도의 적절한 긴장감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는 데 좋다고 여겨왔다. 남북관계가 북·미 대화의 틀 내에서, 딱 그 수준만큼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현상 유지 전략이지 상황 개선을 위한 해법은 아니다.

 

물론 제재 문제는 한·미 간에 조율돼야 할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끈 게 최대의 압박이고, ‘행동 대 행동’ 국면에서도 강력한 압박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남북 협력의 과속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고, 제재 이행이 흔들리면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도 제재 완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제재 완화를 공론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뭉개면 북·미 협상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북한에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약속한 ‘관계 정상화’ 합의와도 배치된다. 실상 대북 제재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재의 키를 쥔 중국과 러시아가 ‘엄격한 이행’을 거부한다. 손 안에 든 모래를 강하게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 많이 삐져나오는 형국이 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 6일 4차 방북 이후 북·미가 실무협상 일정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양측 모두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뜻일 게다. 북한은 핵무기·핵시설·핵물질을 둘러싼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미국은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 속도가 빠르다고만 볼 게 아니라, 미국도 북·미 협상의 선순환적 진행을 위해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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