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푸틴에게도 조롱받는 ‘영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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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푸틴에게도 조롱받는 ‘영국 민주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7. 1.

“내 후임자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은 주권자, 즉 러시아 국민이다. 후임자는 보통·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될 것이다. 물론 그건 영국의 당신들이 가진 제도와는 다르다. 우리는 민주국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디펜던트·데일리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푸틴은 “영국에선 최고지도자 선출이 시민의 직접선거가 아닌, 집권여당에 의해 이뤄진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이상하다”며 영국 정치를 조롱했다고 한다. 


푸틴이 누구인가. 20년째(총리 재임기간 포함) 장기집권하며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절대권력자다. 영국은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이자 모범으로 꼽혀온 나라다. 그런데 어쩌다가 민주주의를 두고 푸틴에게까지 훈수 듣는 처지가 됐을까. 지금 진행 중인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 때문이다. 차기 보수당 대표는 테리사 메이 총리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레이스는 현재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과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의 대결로 압축된 상태다. 


문제는 이들 중 한 명을 영국 총리로 선택하는 권리가 전체 유권자의 0.3%에 불과한 16만명의 보수당원에게만 주어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런던 퀸메리대학 연구 결과를 보면 보수당원 가운데 97%가 백인, 71%가 남성이다.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44%인 반면, 18~24세는 5%에 불과하다. 인디펜던트는 지난 5월 “얼굴색은 창백하고 생각은 낡은 한 무리의 남성들이 영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선택은 대표성이 낮고 민주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수당원과 전체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유고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헌트의 지지도(41%)가 존슨(29%)보다 높았다. 반면 보수당원 대상 조사의 경우 존슨(48%)이 헌트(39%)를 앞지르는 것으로 나왔다. 존슨은 대표적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강경론자이고, 헌트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이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고령자들이 결정했던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기억이 떠오른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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