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의 외교포커스]전작권 전환 협상 다시 해야 한다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유신모의 외교포커스]전작권 전환 협상 다시 해야 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27.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넘겨받는 시기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넘겨받을지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설정해 전작권 전환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백지화’한 것이며, 더 나아가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전작권 전환을 할 수 없도록 ‘대못질’을 한 것이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 조건으로 안정적인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군사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 등을 내세우고 있다. 뻔뻔하고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안보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나라가 추구해온 국방 목표다. 안보 환경은 항상 변한다. 불안정에 대비하는 것이 군의 임무다. 바로 그 때문에 전작권이 필요하다. 전작권이란, 말 그대로 안보를 위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주권이다. 안보 환경이 안정될 때까지 전작권을 미국에 맡겨두겠다는 것은 전쟁이 필요 없는 태평성대를 미국이 만들어 주면 그때 가서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겠다는 말과 같다.

이 조건이 비현실적이어서 사실상 무기연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에 대해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가관이다. 그는 “갑자기 통일이 된다거나 (북한의) 비핵화가 된다든지 하면 전작권 전환을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통일이나 북한의 비핵화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나라 국방장관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전작권을 갖고 오지 않을 심산인가 보다. 또 전작권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붕괴되는 급박한 상황을 맞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 능력을 갖춰야 전작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은 ‘영원히 안 갖고 오겠다’는 말의 동의어다. 미국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전작권을 맡겨놔도 이 문제는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 미사일방어 체계는 만들어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미사일 개발에 맞춰 지속적으로 보완·개발해 나가는 끝없는 군비 경쟁의 시작이다. 미사일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 대응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미국도 냉전시대부터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신뢰할 만한 방어체계는 갖추지 못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전작권 환수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나라 정부 인사들과 보수층이 한사코 전작권을 마다하면서 내세우는 첫번째 핑계는 안보 불안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전작권 전환은) 국가안위라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전작권을 갖게 되면 국가 안위가 위태롭다는 정부의 처절한 자기 고백이다. 북한보다 30배 이상 많은 국방비를 쓰고 미국의 핵 억지력과 방위 공약을 제공받으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자신이 없는 정부라면 정권을 반납해야 마땅하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능력이 없다고 자기 비하를 하고 동맹국의 선의에 안보를 위탁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못난 국가를 존중해줄 나라는 없다. 이미 한국은 이를 경험하고 있다. 남북 간에도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부가 아무리 주장해도 북한은 남측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미국만 찾는다. 만일 북·미가 핵문제나 정전협정 등을 놓고 군사회담을 갖는다 해도 한국은 테이블에 앉지 못하고 물 주전자나 들고 왔다 갔다 해야 할 판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된 국가로 간주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적극 지지하는 미국이 미심쩍고 못마땅하면서도 한·미·일 안보협의에서는 미국을 따라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게 한국의 처지다. 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추가 전작권 전환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당장 미국과 전작권 전환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의 첫머리에는 군 개혁과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올려져야 한다. 무능하고 비겁한 군 체질을 개선하고 부정부패와 사기행각에 물든 ‘군피아’를 척결하는 동시에 군이 안보 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이것은 국가다운 국가에서 살기를 열망하는 국민의 명령이다.


유신모 정치부 차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