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원칙 외교와 눈치보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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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원칙 외교와 눈치보기 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8.

박근혜 대통령은 한번 정한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고 타협도 잘 하지 않는다. 외교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박 대통령의 지지층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지난주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도쿄도지사의 청와대 방문에서도 박 대통령의 단호한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일관계가 사상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1년5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일본 정치인을 만난 자리였지만 박 대통령은 그 흔한 ‘립서비스’조차 없었다. 정부는 한·일관계가 개선되려면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건전한 한·일관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원칙적 강경 외교는 남북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북한에 진정성 있는 태도와 행동을 요구한다. 5·24 조치든, 금강산관광 재개든, 6자회담 재개든 북한의 태도 변화가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꼿꼿하고 원칙적인 외교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위안부 문제는 실로 엄중한 사안이다. 지금까지 아베 신조 내각이 이 문제에 대해 보여준 태도는 한국이 용납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기 전에는 한·일관계를 정상적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태도는 현명한 접근법이 아니다. 일본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전략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사안이다. 양국 관계가 최상일 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지금같은 관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양국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 손쉬운 현안부터 해결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된 결과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변한 북한’과 마주 앉겠다는 자세는 옳지 않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설득과 노력 없이 상대에게 태도를 바꾸고 스스로 변화할 것만을 요구하는 것은 ‘신뢰 프로세스’가 아니라 ‘신뢰를 보여줘 프로세스’일 뿐이다.

한반도와 주변국 '외교 온도' (출처 : 경향DB)

그런데 박 대통령이 원칙을 고수하는 외교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일찌감치 내놨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해석 변경을 ‘역사적 결정’이라며 적극 지지하는 미국의 존재 때문에 불쾌한데도 반대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때 양국 정상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움직임에 대해 “자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정치를 지양하라”고 강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을 슬쩍 공개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정부가 독자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면 된다. 앞에서는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한·중 정상 간 대화라는 기회에 편승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은 뒤 중국의 뒤로 숨어버리는 외교 행위는 당당하지도 않고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이쯤되면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원칙주의인지 눈치보기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국내 정치’라는 키워드를 대입하면 가닥이 잡힌다. 일본·북한 문제는 강경할수록 국내적 지지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일본과 북한 문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속내를 슬쩍 드러낸 것도 국내 보수세력과 지지층을 의식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외교 행위는 원칙의 산물이라기보다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갈등 구조에서 유화책은 정치적으로 항상 인기가 없다. 대책 없는 강경책보다도 지지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만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을 때 과감한 정책을 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유신모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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