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차기 주한 미국대사와 ‘한·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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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차기 주한 미국대사와 ‘한·일 관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5. 12.

2년 전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을 조용히 처리하려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을 때 이를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나라가 미국이었다. 사태의 여파로 외교·안보 분야의 최고 실세인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사퇴하고 외교부 장관이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자 미국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당시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미국의 민간 전문가, 의회 관계자들은 자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협정을 국민들이 일제히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국익을 걷어차 버린 사례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한국민의 인식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결국 한국이 과거에 연연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복잡한 지역 정서를 간과한 채 무리하게 아시아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인지 시간이 지나면 판가름날 것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내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인사들의 인식이 이 정도였으니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시켜 중국·북한 등에서 비롯되는 아시아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한국의 우려가 워싱턴에 제대로 전달될 수는 없었다.

그랬던 미국의 인식은 지난해 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잠시 흔들렸다. 미국은 직설적으로 일본에 실망감을 표현했다. 미·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던 정부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야스쿠니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은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아베 총리의 구두 약속 이후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으며 잠시 미뤄두었던 일본과의 안보협력 조치도 서둘러 처리했다.

- 주한 미대사에 마크 리퍼트 미국방 비서실장 (경향신문 게재일:2014-05-02 40/ 2 [CTS 지면전송])


지난달 서울을 찾았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의 언급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침략역사를 부정하고 이웃의 영토를 탐내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사력을 키우는 것을 많은 한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미국이 지원함으로써 한국민의 대미 인식이 나빠질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과거사와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사안이다. 일본은 북한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평화적으로 자위대를 운영하며 모범을 보여왔다. 일본이 군사적 투자를 늘리는 것을 한국이 우려할 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 도움이 된다.”

한국의 당국자나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난리가 났을 터다. 그만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한·미의 인식 차이는 크다. 엄존하는 이 간극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미 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정세도 변할 수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한국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한국의 급소인 북핵 문제의 해결과 동북아 협력을 가로막는다. 또한 일본의 군사력을 기본축으로 삼는 미국의 전략은 중국도 받아들일 수 없다. 중국을 견제하는 것 외에 미·중 협력관계 구축도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중요한 목표임을 감안하면 미국의 접근법은 구조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차기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한 마크 리퍼트 국방장관 비서실장은 한·미·일 협력을 기초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설계에 큰 역할을 한 오바마의 최측근 인물이다. 이 때문에 리퍼트 내정자가 부임하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및 한·일 안보협력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와서 민심과 정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은 한국에 기회일 수도 있다. 그가 한 국가와 국민을 체스판의 말(馬)로 인식하는 전략가의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과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파악해 백악관에 이를 정확히 전달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건전한 방향으로 수정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유신모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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