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맹목적 북핵 비관론’이라는 섞어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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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이대근 칼럼]‘맹목적 북핵 비관론’이라는 섞어찌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 16.

한 미국인 동북아 전문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최근 2차 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2차 회담이 열리고 일정 성과를 내서 후속 협상도 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한·미 양국, 특히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 즉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관론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체제’라는 구조적 비관론 같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핵 포기는 개혁·개방을, 개혁·개방은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하는 척 할 수는 있어도 핵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비핵화가 어렵다는 판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진지한 협상은 없었다. 북한은 아직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았다. 비관론, 일리 있다.

 

핵 개발도 핵 포기도 아닌, 과도적인 현 ‘비핵화 공약 국면’은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 상줄 수도 없고 벌주기도 애매한, 그래서 북한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을 북한이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비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가장 흔한 비관론은 북한이 과거 그랬듯이 협상-파기-핵 개발을 반복할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북한의 과거로 북한의 오늘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흔히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구분하지만 우리가 아는 북한은 김정일 작품이다. 그게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똑같아 보이고, 김정은 시대는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는 이유다. 김정은은 사실상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시장을 확대했다.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와 다름없다고 장담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핵 불사용 천명, 핵군축,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전제로 한 한반도 비핵화도 비관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이 모두 핵 협상 때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본격 협상도 안 한 상태에서 스스로 폐기 처분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미국 혹은 남측과의 공식 회담에서 핵군축, 핵우산 철거를 주장한 적도 없다.

북한 논리는 이렇다. 핵 무력 완성으로 억지력을 확보함으로써 경제·핵 병진노선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경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억지력 확보로 미국과 협상할 여건이 마련된 만큼 비핵화 협상도 해야 한다. 본래 핵무장의 목적은 핵보유가 아닌, 비핵화였다. 여기서 비관주의자는 잠깐 하며 가로막는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공식 폐기하지는 않았다.’ 맞다. 헌법의 핵보유국 조항도 그대로다. 공식 폐기는 핵문제 완전 타결을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폐기했다가 협상이 결렬되면 곤란해진다. 그래도 비관주의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핵 사용도 확산도 않겠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부각했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는 뭐라고 했나?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며 핵동결을 추가했다.

 

과거 보다 한발 전진했다. 궁지에 몰린 비관주의자,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지난해 9월 태형철 김일성 종합대 총장 겸 고등교육상이 뉴욕 토론회에 서면으로 제출한 발표문, 지난달 20일 조선중앙통신 정현의 논평은 뭔가? 핵우산 철거 없으면 비핵화도 없다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의 일방적 핵 폐기로는 미국의 핵위협이라는 실체가 아무 영향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반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실질적인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 태형철의 해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러는 핵 국가지만 북한은 이들로부터 핵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와 우호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 양국도 적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 북·미관계 정상화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한반도 비핵화의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 관계 정상화가 보장된다면 핵우산, 주한미군은 핵 폐기의 변수가 안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9월 평양공동선언 내용이다.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지만 남북이 핵우산, 주한미군 문제 해법에 공감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합의다. 비관론은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비관론이 북한으로부터만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태도, 북·미관계의 복잡성이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북한 주장을, 전후 시차와 공식 비공식 발언의 구분 없이, 대내외 언명의 차이, 최대 목표와 현실적 목표의 간극을 무시한 채 맥락 없이 범벅해서 맹목적 비관론이라는 정체불명의 섞어찌개를 차려 내놓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건 전문가다운 태도도 아니고 정직한 자세도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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