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프로그래머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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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잘나가던 프로그래머의 자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9. 27.

중국의 무료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인 위폰(WePhone)의 개발자 쑤헝마오(蘇享茂)가 지난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폰은 저렴한 가격과 높은 품질을 무기로 2000여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인기 앱이다.

 

쑤헝마오는 자살 직전 위폰의 메인 창에 “회사 대표가 악처에게 죽임을 당해 더 이상 위폰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는 공지문을 올렸다. 잘나가는 프로그래머인 쑤헝마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쑤헝마오는 지난 3월 말 결혼정보 모바일 앱인 시지쟈위엔(世紀佳緣)에 가입했다. 이 회사는 전도유망한 쑤헝마오에게 VIP 회원자격을 부여했고, 현재 전처가 된 아름다운 ‘그녀’를 소개받았다. 6월에 백년가약을 맺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운명 같던 사랑은 한 달 만에 막을 내렸다. 이혼 과정도 순조롭지 못했다.

 

위폰 이용자들 중 상당수가 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다. 인터넷 전화를 쓰기 위해 외국에서 결제하는 사용자가 많은데, 위폰 측은 중국 당국에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세금을 탈루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며 신혼집과 1000만위안(약 17억원)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전처의 협박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이 사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쑤헝마오 본인은 괴로워하다 잘못된 선택을 했고, 부모는 생때같은 아들을 잃어버렸다. 위폰 사용자들도 피해를 봤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가장 큰 곤경에 처한 것은 쑤헝마오에게 전처를 소개해준 결혼정보회사 시지쟈위엔이다. 그녀는 쑤헝마오와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했던 경력이 있었지만 이 회사는 이를 알리지 않고 미혼으로 소개했다. 그녀의 실명인증도 하지 않는 등 ‘검증’이 부족했다. 누리꾼들은 그녀가 결혼 전부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쑤헝마오에게 접근했고, 시지쟈위엔이 이를 방조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모든 비난은 시지쟈위엔에 쏠렸다. 쑤헝마오가 자살 한 후 시지쟈위안의 모회사의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모바일 세상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중국은 앱 천국이다. 지갑이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구매, 결제, 배송 등 거의 모든 경제생활이 가능하다. 음식 배달부터 결혼, 구직, 난치병 치료까지 인생이 걸린 중대사도 앱과 의논한다. 이런 현상에 기대어 중국의 사회문제가 모바일 앱의 문제로 전이되고 있다.

 

산둥의 한 농촌에서 태어난 리원싱(李文星)은 유명학교인 둥베이대를 졸업한 후 구직구인앱인 ‘보스지핀(BOSS直聘)을 통해 톈진에 있는 소프트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소프트회사 껍데기를 쓴 다단계회사였다. 리원싱은 다단계회사에 시달리다 못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수차례 돈을 빌렸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누가 전화하든 절대 돈을 주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졸업생을 이용한 다단계회사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중국 누리꾼들은 다단계회사의 횡포보다는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무책임한 보스지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지난해 희귀암에 걸린 대학생이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가 추천한 병원에서 엉터리 치료를 받다가 숨지자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바이두의 검색 광고다. 중국의 허술한 의료정보 감독관리 제도 문제는 쑥 사라졌다.

 

정보의 홍수, 모바일 세상에서 관시(關係·관계)보다는 검색의 힘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 검색 결과가 나오면 실존대상이지만, 검색해도 자료가 나오지 않으면 무존재와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난 무책임한 중개 앱의 운영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플랫폼 운영자는 당연히 검증의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모든 잘못을 돌린다고 해서 당국의 관리 소홀 책임까지 면책된다고 볼 수 없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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