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남북경제공동체, 동반성장을 염두에 두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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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운찬 칼럼]남북경제공동체, 동반성장을 염두에 두어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8. 21.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경협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15일 제73주년 광복절 축사에서 나온 동북아 6개국(남·북·중·일·러·몽)에 미국까지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통일경제특구’ 구상이 그것이다. 지루한 교착국면에 들어선 북·미 협상을 견인하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 4대국 모두가 참여하는 방안을 구체화했다는 점이 기존 경협 구상과는 다르다. 그런데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뭔가 불안하고 서두르는 감이 있다. 

 

사실 남북 및 동북아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4·27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남·북·미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되면서 한반도 주변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와 안보의 교환, 즉 ‘평화교역’ 구상이 착실하게만 진행된다면 침체된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경제 동반성장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핵 관련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이번 구상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지 아니면 국면을 전환하는 카드가 될지 모르지만, 다듬고 숙고한 구상이길 바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정부 관계자들이 북한을 새로운 투자처나 시장으로만 인식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 그러한 관점에 내재한 자본과 시장 중심의 ‘성장주의’ ‘우월주의’에 대한 우려다. 국회에 제출한 관련 법안들도 단순히 기존의 법 일부를 수정한 ‘일부개정법률안’이 대부분이다. ‘어떤 경제공동체인가’에 대한 담대한 고민과 이를 실현할 구체적 실천정책이 부족하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킨 승자독식, 무한경쟁의 남한 경제 질서가 북한까지 확장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통일은 남한과 북한의 영토와 주민 결합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남한과 북한 주민 모두에게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 남북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보장하는 새로운 국가 질서로 나타나야 한다. 남북경제공동체 질서도 이러한 새로운 국가 질서를 실현하는 방향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전면적 전환의 기회를 맞았다.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동북아 정치·군사 질서의 평화적 재편과 남북 및 동북아 경제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적 질서구축의 기회다.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의 이익을 실현하려면 남북경제공동체에 대한 담대한 구상과 함께 남북의 컨센서스가 꼭 필요하다. 그러려면 남한 사회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우리 경제 질서가 작동하는 사회작동원리(또는 토대)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남한이 통일과 남북경제공동체를 주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작동원리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어떤 원칙 또는 철학·이념인 사회작동원리는 공동체 구성원 절대다수가 생활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그 이유는 사회작동원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따르면 자기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으로 현재 작동하는 법과 제도가 불공평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사회작동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법과 제도를 요구한다. 지난 촛불민심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사회작동원리는 ‘신자유주의’였다. 그리고 사회작동원리로서 신자유주의 핵심이 ‘시장만능’과 ‘무한경쟁’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확인하듯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구조화였다. 2016년 광장의 촛불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회작동원리에 기반한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하는 새로운 대한민국도 그러한 촛불민심의 요구를 수용한 것일 터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사회작동원리는 무엇일까? 바로 ‘지속적인 공동체 발전’이 가능한 원칙과 철학이다. 나는 그것을 동반성장 사회라고 생각한다. 동반성장 사회를 만드는 요소는 다양하게 구성된다. 자유로운 경쟁은 보장하되 소수 대기업으로만 과실이 집중되는 시장구조는 제약된다. 국가는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과, 시장에서 실패한 이들에게 재진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사회안전망과 재교육 시스템도 촘촘하게 구축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경쟁과 성장을 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신북방경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이 남북경제공동체와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동하는 경제 질서로 작동하려면 북한을 성장의 대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성장 수치의 증가’만을 목표로 하면 대기업 중심의 경협이 되어 한반도 차원의 불평등·불균형 경제 질서를 조성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남과 북의 지속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경제 질서를 만드는 사회작동원리에 기반해야 한다. 성장주의,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상실된 남한의 가계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북한의 경제주체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질서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경제 질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향이 맞는다고 정책이 다 적절한 처방인 건 아니다. 근래 문재인 정부는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다. 북핵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과 거세지는 젠더 이슈에 해묵은 노동문제까지 민생과 사회적 이슈가 분출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거칠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정부의 시그널이 종잡을 수 없다는 게 크게 작용했다. 정권이나 정부 내 정책조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보길 바란다. 정권에 대한 ‘신뢰’와 ‘안정’이 훼손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내용과 별개로 이번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통일경제특구’ 구상을 그리 썩 기껍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유가 이것이다. 제2의 ‘통일 대박’론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정부의 일관된 남북 경제협력 정책기조가 성장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공정하게 나누는 통일경제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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