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민의 ‘스모그 배상’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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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중국 시민의 ‘스모그 배상’ 소송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2. 26.

중국 베이징 시민 저우이(鄒毅)는 지난해 1월27일부터 베이징의 아침 기상 상태를 휴대폰으로 찍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같은 지점에서 사진을 찍어 일목요연하게 베이징의 대기 변화를 보여주는데, 그는 신경보(新京報)와의 인터뷰에서 “주변 사람들이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베이징과 가까운 허베이(河北)성 스좌장(石家莊)시에 사는 리구이신(李貴흔)은 시 환경보호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국이 스모그를 통제할 법률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천식 환자인 그는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구입에 돈을 썼다며 1만위안(약 174만원)의 배상 등을 요구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26일 전했다. 소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지만 스모그 때문에 중국 시민이 소송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베이징에서 살다 최근 서울로 돌아간 한 지인은 “서울이 미세먼지 때문에 문제라고는 하나 베이징에 비하면 들이마실 만하다”고 말했다. 서울 공기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베이징 공기가 워낙 안 좋다는 뜻이다. 만약 서울에서 베이징 수준의 스모그가 1주일 가까이 지속되고,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국회에 관련 특위가 설치되고, 환경부 장관 경질 요구가 봇물을 이룰지 모르겠다.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


베이징을 뒤덮고 있는 스모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중국에 환경운동을 활발히 하는 자발적 시민단체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스모그가 짙게 깔려 어두워진 중국 베이징 도심 도로(출처: 로이터연합)


중국의 스모그는 인간의 탐욕이 자초한 자연의 반격이란 말이 무리가 아니다. 환경 파괴를 대가로 중국이 추구해 온 고성장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성장의 질을 중시하고 환경보호를 외치나 과거 행적으로 볼 때 썩 신뢰가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중국에 환경보호를 전담하는 장관급 부서가 설치된 게 2008년이다. 베이징에서 스모그 측정수치를 처음 발표하기 시작한 기관은 미국 대사관이었다. 중국 지도자들은 2008년 성장 위주의 발전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며 집단학습을 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환경 문제는 파묻혔다. 지난해 외국 기업이 베이징 근무 직원들에게 스모그에 따른 생명수당을 지급키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바 있다. 국내 대기업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동향을 파악하려 했지만 중국 당국의 입막음으로 어느 기업인지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토지오염 실태조사를 마치고도 발표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리들에게는 대외적인 이미지 손상을 막는 게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청정에너지 보급, 저탄소 경제 실현 같은 경제구조 전환이 스모그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 자가용 운행 자제를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오염 유발 기업들을 엄격히 처벌하라는 중국 언론들의 요구도 백번 들어 타당하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가 함께 나타나야 한다. 성장에 기울기 쉬운 정부를 압박하고 기업을 감시하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환경은 성장에 늘 희생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환경을 중시하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지만 실질적 행동은 별개일 수 있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도시의 스모그를 두고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e·대기오염으로 인한 종말)란 표현이 등장한 지 꽤 됐다. 강한 중국보다 깨끗한 중국, 해양굴기보다 녹색굴기를 우선순위에 둬야 중국인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천문학적 국방비를 줄이고 환경에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하건만 이를 요구하는 중국 사회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중국의 시민단체들은 관변 성격이어서 정부 통제하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저우이나 리구이신 같은 중국인들이 적지 않을 텐데 이들을 묶어줄 시민단체의 부재가 아쉽다.


오관철 |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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