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 지도층의 ‘도덕 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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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중국 지도층의 ‘도덕 불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4. 16.

마오쩌둥(毛澤東)은 네번째 부인 장칭(江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딸 리너(李訥)를 각별히 사랑했다. 1940년 태어난 리너의 성이 마오가 아닌 이유는 마오쩌둥이 국민당에 쫓길 무렵 리더성(李得勝)이란 가명을 썼기 때문이다. 리너는 마오쩌둥의 철저한 집안 단속을 알려주는 일화에 종종 등장한다.

한번은 리너가 갑자기 병이나 위중한 상황이었다. 마오쩌둥은 딸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비서진에게 절대로 자신의 딸이란 사실을 알리지 말도록 했다. 그러면서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수속을 밟으라고 지시했다. 리너가 베이징사범대 부속중학에 재학할 당시 학교생활기록부에 쓰인 부친 이름은 마오쩌둥의 비서 이름이었다.

마오쩌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논란이 많고, 가족에 얽힌 일화도 미화된 측면이 없지 않겠으나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만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정받고 있다.

마오쩌뚱(출처 :연합뉴스)


마오쩌둥에 비해 지금 지도층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전직 고위층의 비리 소식을 접하노라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국가지도자급인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周永康)은 석유방(石油幇)이다, 쓰촨방(四川幇)이다 해서 측근과 가족들의 비리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아들까지 당국에 감금됐고, 15조원대의 자산이 압류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애당초 없었던 모양이다. 저우융캉의 둘째 부인에게 시장직을 맡게 해 달라며 수십억원의 뇌물을 건넨 관리도 있었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아들과 손자의 비리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총리를 지낸 원자바오(溫家寶)와 리펑(李鵬) 일가도 막대한 부를 축재한 게 확실하다.

공산혁명 과정에서 깨끗함을 무기로 부패한 국민당을 몰아낸 중국 공산당이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은 아이로니컬하다. 시진핑(習近平) 체제 출범 후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잡겠다며 부패 척결 바람이 불고 있고, 매주 4명꼴로 지도자급 당·정 간부가 비리 혐의로 낙마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 어디가 끝일지 가늠하긴 힘들지만 확실한 점은 부패 의혹에서 자유로운 고위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지성은 그리스인만 못하고, 체력은 게르만인에게 처지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들보다 약한 로마인들이 번영을 누린 이유 중 하나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꼽았다. 물론 후일 로마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긴 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두고 몇 해 전부터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진단해 왔다. 그러나 중국 지도층의 도덕성은 일반 백성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어느 나라든 지도층과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면 그 나라의 국격(國格)은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중국 공직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웨이런민푸우’(爲人民服務)다. ‘인민을 위해 일한다’는 뜻인데, 마오쩌둥이 1944년 탄광 붕괴사고로 숨진 인민해방군 병사 장쓰더(張思德)를 기리면서 한 말이다. 29세에 생을 마감한 장쓰더는 어려서 고아가 됐으나 자신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인물로 중국에서 평가받는다. 배고픈 시절 다른 병사들이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자신의 식사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장쓰더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표현은 어색해 보이지만 웨이런민푸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국판 표현이 아닐까 싶다.

빈부격차가 프랑스 혁명 당시 수준을 넘는다는 중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마오쩌둥이든 장쓰더이든 간에,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개인과 일가의 사사로운 이익을 멀리했던 선배 혁명 전사들의 발자취를 중국 지도층들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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