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빙빙과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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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판빙빙과 가짜뉴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0. 24.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범위를 중국 전체로 넓히면 더 ‘깜깜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에 있다는 이유로 취재 영역을 벗어난 질문을 받곤 한다. 예를 들면 “중국 사람들은 왜 잘 안 씻냐”(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혹은 “아직도 안 씻냐” 같은 질문부터 “중국에도 짬뽕이 있냐” 등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지난 한 달간 쏟아진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판빙빙은 진짜 어떻게 된 거냐”다. 근래 판빙빙 사건처럼 한국 대중의 전폭적 관심을 끈 중국 뉴스도 없어 보인다.

 

판빙빙 사건은 어찌보면 간단하게 정리되는 뉴스다. 이중계약 의혹이 제기된 후 3개월간 공개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탈세 사실이 확인돼 9억위안(1437억원)가량의 벌금이 부과됐으며 이를 납부했다.

 

2018년 5월 8일 찍은 이 사진은 중국 여배우 판빙빙이 영화 '토도스 로 사벤'의 상영을 위해 도착했을 때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체 한국 대중은 왜 그렇게 판빙빙 사건에 열광했을까. 중국 당국에 의해 통제된 언론 보도와 비밀스러운 조사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에 인기 정점에 있는 아름다운 여배우, 실종, 정치인과의 관련성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14억 인구 대국이자 통제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뭔가 더 비밀스럽고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의 쇼킹한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부채질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확인되지 않은, ‘지라시’ 수준의 가짜뉴스다. 판빙빙이 공개 활동을 하지 않자 실종설, 미국 망명설, 심지어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대부분 대만, 홍콩의 연예 매체의 ‘카더라 통신’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인체 표본’설은 기가 막힌다. 중국의 한 아나운서가 정치인 보시라이와 염문설에 얽힌 후 실종됐는데 10여년 후 그녀와 비슷한 인체 표본이 전시되면서 연관설이 떠돌았다는 것. 여기에 ‘실종’된 판빙빙의 뉴스를 슬쩍 얹었다. 마치 판빙빙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정작 이 뉴스에는 확인된 내용은 없고 염문설, 실종설, 임신설, 연관설 등 설뿐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과 아름다운 여배우의 연관설은 대중의 관심을 자극한다. 판빙빙이 탈세 혐의를 인정한 후에는 중국의 유력 정치인과의 관련설이 돌았다.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중국의 수배를 받고 있는 재벌 궈원구이의 주장이 대만 매체를 통해 나왔다. 판빙빙-왕치산 동영상은 확인된 적도 없다. 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마치 판빙빙 동영상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보도가 쏟아졌다. 사실 확인이 보도의 기본 원칙이겠지만 판빙빙 사건에 대해서는 외국 매체 인용이라는 면죄부로 세탁돼 퍼져나갔다. 이들이 인용한 홍콩, 대만 연예 매체는 무자비한 보도로 유명하다. 홍콩 잡지 ‘동주간’은 여배우 유자링이 폭력배들에게 납치된 후 강제로 촬영된 알몸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일말의 도덕 의식도 없다.

판빙빙은 이미 지난해 왕치산에게 성상납을 했다고 주장한 궈원구이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의 연예인들도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수사를 요청한다. 그러나 무자비한 한국의 보도에 대해서는 판빙빙의 감시가 닿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최근 가짜뉴스 근절에 애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중국 배우에 대한 한국 내 보도는 누구의 규제도 닿지 않는 회색 영역에서 부글부글 끓어넘쳤다. 매체와 상상력과 호기심이 빚어내는 이런 가짜뉴스는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홍콩 배우 궈푸청은 2년여 전 22살 연하의 팡위안과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임신설을 비롯해 팡위안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궈푸청은 “유언비어는 지혜로운 자에 의해 멈춰진다”며 누리꾼들과 가짜뉴스 매체들에 일침을 놨다.

 

판빙빙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언제 또 제2, 제3의 판빙빙 사건이 나와 가짜뉴스가 양산될지 모른다. 신중한 보도,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가짜뉴스를 걸러낼 지혜로움이 시급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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