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도 안보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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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풍수지리도 안보를 위한 것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4. 1.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를 내세웠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가장 먼저 손을 대고 이로 인해 외교부와 국방부 등 외교·안보 관련 부처들을 뒤숭숭하게 만든 것은 의외였다. 결국 자리를 비워주게 된 국방부는 지금 북한 핵미사일 대응이 아닌, 청사 이전에 따른 안보 리스크와 시행착오 최소화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당선인 측이 밝힌 이전 이유는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라고 불릴 만큼 외딴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과의 소통은 의지의 문제이지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다. 더욱이 당초 공약은 용산이 아니라 광화문이다.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일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대면서 굳이 강행하겠다고 하니 당선인이 풍수지리를 의식했기 때문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가 풍수지리적으로 흉지라는 주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로가 이어지면서 청와대 터가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은 다 이유가 있다.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범죄를 저질렀거나, 청와대에서 장기집권하는 동안 악행을 저질렀거나, 또는 재임 기간 정치를 잘못해서 정권을 내주고 정치보복을 당한 경우 등이다.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전임자들의 불행은 척박한 국내 정치와 험난했던 한국 현대정치사의 산물이지 풍수 탓이 아니다. 청와대를 쓰는 동안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짧은 시간 안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풍수지리는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로부터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리다. 선점해야 할 요충지가 어디인지, 어디에 진을 쳐야 공격과 방어에 유리한지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만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출병하는 장수 옆에는 작전을 짜는 군사가 있기 마련이고, 그 군사는 모두 풍수지리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을지문덕이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오언시에도 “그대의 신통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에 닿고, 신묘한 계산은 지리를 꿰뚫었노라(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라는 구절이 나온다. 북악산 밑에 자리한 청와대가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 적지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풍수의 본래적 의미에 충실한다면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로는 최적지일 수도 있다.

풍수 명당은 흔치 않다. 따라서 모두가 명당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명당을 찾지 못한 사람이 모두 화를 당하라는 법은 없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방비하면 된다. 그런 상징적 조치로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 민심을 다스리는 것이 풍수의 또 다른 기능이다. 말 한마디, 벽돌 한 장으로 사람을 근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풍수다.

풍수도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풍수를 금기로 여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풍수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풍수의 주인은 사람이지 풍수 자체가 될 수 없다. 풍수는 말 그대로 바람과 물이다.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억지로 강제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행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풍수의 근본 취지를 망각하고 평안·발복의 수단으로만 여기면 미망(迷妄)이 된다.

풍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청와대를 지금 당장 옮기는 것은 옳지 않다. 순리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여론도 절대 옮기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부작용을 최소화한 이후에 하라는 쪽이 많다. 모든 사람의 의혹을 받으며 안보 리스크를 아랑곳하지 않고 여론도 무시하면서 이전을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며 불행을 부르는 일이다.

지금은 한반도 안보 위기가 다시 몰려오는 매우 엄중한 시기다. 국가안보는 헌법도 제한할 수 있는 최우선 사안이다. 모든 일을 제쳐놓고 안보 문제에 매달려야 할 시기에 중추적 기능을 담당해야 할 안보부처를 뒤흔들고 유사시 대통령이 미니버스 안에서 국가 위기 상황을 다뤄야 하는 것을 납득할 국민은 없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윤 당선인이 풍수꾼의 말에 휘둘려 청와대 이전을 결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갖고 있든 그것이 국가안보에 앞설 수는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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