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만 있고 좌표 없는 윤석열 정부 대외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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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방향만 있고 좌표 없는 윤석열 정부 대외전략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6. 3.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은 미국이 대외전략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가 중국 견제임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미국의 관심은 세계 패권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을 따돌리고 현재의 격차를 유지·확대하는 데 집중돼 있다. 미국은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힘을 합쳐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현재의 질서에 현상 변경을 가하려는 중국을 배제하려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 직후인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조지워싱턴대 연설에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파했다. 블링컨 장관이 연설에서 핵심 요소로 강조한 것은 ‘투자(invest)·공조(align)·경쟁(compete)’이었다.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첨단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권위주의적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동맹·우호국들과 공조해야 하며,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1년 전 ‘대결(confrontation)·경쟁(competition)·협력(cooperation)’의 3C로 대중국 정책을 설명한 것에서 진화한 개념이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아직 미완성이며 불투명하다. 블링컨 장관이 말한 투자는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첨단기술을 가진 해외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확대하려면 미국의 국내 시장에서 인센티브가 보장되어야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미 의회에서 반도체 기업 지원법안 통과가 지연되고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만을 지원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좋은 예다.

우방과의 공조를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우방국에 돌아가는 보상이 불투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 동참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가들에 중국 견제로 얻는 ‘전리품’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한다. 동맹·우호국의 힘을 빌려 패권을 유지한다는 전략은 매우 낯설고 새로운 개념이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갖는 것이 모든 동맹·우호국에 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해야만 가능한 전략이다. 하지만 세계 국가들이 자국의 국익을 미국의 선의에만 맡기기에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보여준 행보가 미덥지 않다. 세계는 중국을 통해 얻는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이 주어질 수 있는지를 저울질하며 망설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미국의 구상을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반도체 기술과 같은 첨단산업의 역량을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안에서 발휘하고, 세계 6위권의 군사적 역량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펼치게 된다면 미국은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전통적 우방국인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동행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방향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동맹국이라고 해도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국이 끝까지 동행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좋으나 어디까지 밀착할 것인지 분명한 선이 보이지 않는다.

한·미 동맹과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 한·중관계에 대한 전략도 찾기 어렵다. 전략적 모호성을 벗었다는 윤석열 정부이지만, 중국 문제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와 같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는 것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IPEF의 기본 취지가 ‘중국 배제’인데 이 같은 설명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전략적 모호성을 벗고 한·미 동맹 강화로 방향을 잡았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변명보다 “중국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 것도 일반적인 의미라고 강변할 게 아니라 포괄적 전략동맹에 부합하도록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것은 아직 대중국 전략이 없다는 방증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이 방향을 정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일본·호주 등에 비해 뒤처진 미국과의 동맹 서열을 빨리 같은 반열로 올려놔야 한다는 조바심만 보일 뿐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의 정확한 좌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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