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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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108

15세 소녀가 들춰낸 프랑스의 위선 교육이란 단어는 차마, 불의와 위선을 그 성스러운 치맛자락 속에 감추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한 책 속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찬양과 이민자 탄압에 대한 긍정을 담지는 못한다. 우린 아이들에게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라고, 세상의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모든 학교 정문 위에는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이 세 가지 혁명의 정신을 잊은 지 오래인 듯한 이 시절에도, 아이들만은 이 세 가지 정신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던가 보다. 프랑스 고교생들은 사회가 그들이 배운 당위를 배반하자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외쳤다. “축출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우린 모두 이민자의 자녀”라고, “인권의 나라 프랑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사회엔 관용이, 학.. 2013. 10. 25.
감옥 없는 나라로 가는 첫걸음 지난해 프랑스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정치인의 이름은 법무부 장관 토비라(Taubira)였다. 그녀의 이름을 따 ‘토비라법’, 혹은 ‘모두를 위한 결혼법’이라고도 불리는 동성애자 결혼법이 통과되면서, 우로부터의 비난과 좌로부터의 응원을 한몸에 받으며 프랑스사에 확고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그녀가 다시 한 번 좌우가 격렬하게 맞붙을 개혁 법안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형벌제도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다. 지난 9일 열린 장관회의에서 토비라 장관은 그동안 준비해 온 형벌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지난 여름, 2025년의 프랑스를 구상해보라는 올랑드 대통령의 주문에 “대체형벌들이 활성화되어 감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고, 경범죄자는 교도소로 보내지 않으며, 범죄자들의 사회 재편입을 돕는” 세상을 그려보였던 토.. 2013. 10. 11.
프랑스 아이들 ‘머릿니와의 전쟁’ 예술의 나라 프랑스? 아마 그럴지도. 그러나 이 그럴듯한 나라의 아이들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다.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급속하게 퍼져가는 머릿니가 그것이다. 매년 9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번 주말 일제히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蝨)를 소탕해줄 것을 부탁한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먹만 한 크기의 이 그림을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3~4년 전만 해도 학기 초에만 치르던 이 난리법석은 이제 일년 내내 상시적으로 학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됐다.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머릿니들은 최근 완전히 회귀했고, 이제 이들은 그 어떤 독한 약에도 꿋꿋하게 건재하는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머릿니 약을 써도 이의 30%.. 2013. 9. 27.
루브르 박물관 위조 입장권 “루브르 박물관의 존재야말로 프랑스가 실천해 온 문화의 공공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프랑스의 문화정책가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해 왔다. 절대왕정의 심장부였던 궁전에서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연간 1000만명(2010년)씩 드나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으로 변모한 과정을 지켜본다면, 이 주장에 설득력이 있음을 사실로 인정하게 된다. 12세기에 요새로 지어졌던 이 건물이 16세기에 들어 증축을 거쳐 왕궁으로 기능하다가 왕실 소장 예술품 보관소로 변모하게 된 건, 168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그리고 1789년의 혁명을 주도한 국민회의가 왕실과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예술품들을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혁명을 문화영역으로 연결시킬 줄.. 2013. 9. 13.
이슬람과 민주주의, 공존할 수 있는가?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이 ‘똘기’ 충만한 질문은 긴 여름휴가 후 가진 올랑드 정부의 첫 번째 각료회의에서 내무부 장관 발스가 던진 것이었다. 태양 아래 건강하게 그을린 얼굴들을 마주하며 화기애애하게 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충격으로 술렁였다. 발스 장관은 이어서 “가족 이민이 아프리카 인구정책에 야기하는 문제와 이것이 유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가족이민법 개정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자신의 돌발 발언이 의도하는 구체적인 발톱을 드러냈다. 아프리카에서 알제리, 모로코를 비롯해 20개의 식민지를 거느려왔던 프랑스의 역사는 수많은 아프리카의 값싼 노동력을 끌어들여 이들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용해왔다. 일하러 프랑스에 온 남자를 따라 나머지 가족들이 이주하면서 프랑스 내의 이.. 2013. 8. 23.
바게트 소비 줄이는 프랑스인들 10여년 전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의아하게 눈에 들어왔던 첫 광경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골목마다 딱히 상호도 없이 그냥 빵집(Boulangerie)이라고만 써 있는 이 가게들은 아침 7시면 문을 연다. 그로 인해 내가 가졌던 프랑스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프랑스 사람들은 부지런하구나’였다. 금쪽같은 아침 시간에 바게트 하나 사려고 줄을 (대부분 남자들이) 선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주식으로 먹는 바게트를 집에서 해 먹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않았는지, 이것은 또 지나친 불합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알고 보니 예로부터 빵은 집에서 구워 먹지 않았다. 마을마다 화덕이 하.. 2013. 8. 9.
프랑스 극우단체, 위험한 모험의 종말 38도까지 치솟는 살인적 폭염으로 들끓는 올여름, 프랑스 극우파들에게는 간담이 서늘했던 잔인한 여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24일 내무부 장관 마누엘 발스는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과 ‘젊은 국가주의자’를 강제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7월 초 이미 3개 극우단체의 해산이 발표된 바 있으니, 한 달 사이 극우단체 5개가 사라진 셈이다. 발스 장관은 “노골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유태인 혐오를 선동하고, 나치의 폐해를 부인하며, 나치와 협력했던 프랑스의 비시 정부와 나치 협력자들을 찬양하고, 비시 정부의 수장 페탕에게 경의를 바쳐왔다”고 이 단체들을 해산하는 이유를 밝혔다. 극우단체 ‘프랑스의 과업’의 출발은 한 집안사에서 시작된다. 설립자 피에르 시도스의 아버지는 나치 협력자였다. 시도스의 아버지는 1945.. 2013. 7. 29.
아비뇽축제, 투쟁과 삶 예술의 용광로 늦가을을 연상시키는 스산한 날씨가 파리의 초여름을 완전히 몰수해 버리더니, 7월에 접어들며 드디어 맑은 하늘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상공에 등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7월은 바캉스 시즌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삶의 가장 치열한 순간이 펼쳐지는 때이기도 하다. 넉넉한 태양을 누릴 수 있는 남쪽으로 사람들은 이동하고, 거기선 수많은 축제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올해 67회를 맞는 아비뇽축제는 가장 큰 이목을 집중시키는 여름 축제의 꽃이다. 아비뇽축제를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로 등극시킨 건 아비뇽 OFF. 초대받지 못한 극단들이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트럭에 짐과 소품을 구겨 넣고 인구 9만명의 작은 도시로 몰려온다. 올해도 아비뇽 OFF에 참가하는 극단 수는 신기록을 갱신했다. 20개국에서 온 1066.. 2013. 7. 12.
철학적 지성이 향하는 한 점- 행동 지난주 프랑스의 수능인 바칼로레아 시험이 치러졌다. 일주일간 치러지는 이 시험은 바칼로레아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시험으로 문을 연다. 인문, 자연, 그리고 경제, 사회로 나뉜 각 분야의 학생들에겐 3개의 질문이 주어지고 학생들은 그 중 하나를 택하여 답을 쓴다. 무려 4시간 동안. 철학시험이 치러진 다음날, 언론과 방송들은 학자들을 초대해 각각의 질문들에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범답안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보다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후, 곧 세상에 발을 디딜 학생들이 철학적 고찰로 머리를 환기시켰던 것처럼, 사회 전체가 올해의 철학 문제를 들고, ‘사고를 자극시켜보는 경험’을 공유하는 일종의 철학주간 의식에 가깝다. 올해에는 올랑드 내각의 장관들이 기꺼이 자신들이 받은 바칼로레아 철학 점수를 공개하는 작은 .. 2013.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