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 소비 줄이는 프랑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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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바게트 소비 줄이는 프랑스인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8. 9.

10여년 전 처음 파리에 왔을 때, 의아하게 눈에 들어왔던 첫 광경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골목마다 딱히 상호도 없이 그냥 빵집(Boulangerie)이라고만 써 있는 이 가게들은 아침 7시면 문을 연다. 그로 인해 내가 가졌던 프랑스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프랑스 사람들은 부지런하구나’였다. 금쪽같은 아침 시간에 바게트 하나 사려고 줄을 (대부분 남자들이) 선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주식으로 먹는 바게트를 집에서 해 먹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않았는지, 이것은 또 지나친 불합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알고 보니 예로부터 빵은 집에서 구워 먹지 않았다. 마을마다 화덕이 하나씩 있어서 그 화덕에서 마을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에 빵을 굽고 그걸 두루 마을 사람들이 나눠먹던 전통이 있었다. 그러다가 삶이 도시화·산업화되면서 마을 공동의 화덕을 동네 빵집이 대신하게 되고, 여전히 남자들이 아침에 가서 그걸 사오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편리와 효율을-프랑스적 사고에는 효율이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넘어서는 전통에서 비롯된 행동 패턴이었다.


옆구리에 긴 바게트 빵 하나를 끼고 길을 가는 모습은 카페 테라스에서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떠는 모습과 함께 일상속의 프랑스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인 것이 사실이다. 매년 최고의 바게트를 선발하고 그걸 만든 빵집은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에 바게트 빵을 공급할 수 있는 명예(!)를 누리며 이런 과정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될 만큼 바게트는 프랑스인의 삶에 밀착된 문화적 기호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의 길가에 늘어선 카페 테라스 (경향DB)


그런데 이러한 끈질긴 관습에 변화가 생겨났다. 40년 전에 비해 프랑스인의 바게트 소비가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40년 전 하루에 바게트 빵 한 개를 평균적으로 먹던 프랑스인들이 지금은 반개밖에 먹지 않는다. 여성과 청소년 층에서 이 바게트 소비의 감소는 더욱 두드러진다. 10년밖에 이 나라 문화를 겪지 않은 나조차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주요 원인은 식생활 습관의 다원화에서 찾아진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흰 밀가루와 물만으로 빚어진 가볍디 가벼운 바게트라는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제 좀 더 건강한 식습관을 찾아 다양한 곡물로 만든 묵직한 빵을 찾고 쌀, 메밀, 심지어는 구기자까지 몸에 좋다는 각종 시리얼을 섞어 먹는 방식으로 식사 패턴을 급속히 바꾸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빵연구소가 “빵은 사셨나요?”라고 적은 표지판까지 만들며 바게트 빵 소비 촉진에 나섰고, 이 같은 프랑스에서의 현상을 미국 언론들이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사람들의 바게트 빵만큼이나 견고하던 자기애는 식어가고 있다. 그들이 자랑하던 사회보장시스템도, 주 35시간 근무도, 8월 내내 지속되는 바캉스도 아니다. 그들이 끈질기게 먹던 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라고 보도했다.


(경향DB)


미국의 햄버거와 콜라 문화, 멀건 아메리칸 커피를 비웃으면서도 어느샌가 거기에 물들어가는 프랑스 사람들, 프랑스의 문화적 우월감을 틈만 나면 깎아내리고 싶어하면서도 농익은 프랑스산 포도주와 바게트, 에스프레소 커피를 은근히 흉내내고 싶어하는 미국 사람들 사이에 흔히 벌어지곤 하는 신경전이다. 느림과 여유, 이 두 가지가 전제돼야 나올 수 있는 ‘깊은 풍미’는 신속함과 편리,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생산되는 ‘쉬운 맛’과 오랜 싸움을 벌여왔다. 바게트 소비 감소를 둘러싸고 재빠른 공격을 시도했던 미국, 그러나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8월에 프랑스는 모두 휴가 중이라서.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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