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과’ 부러운 오바마의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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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과’ 부러운 오바마의 화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4. 24.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에 깊은 유감을 느끼며, 정부를 대표해 대통령으로서 유가족들에게 가장 깊은 사과를 드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 민간인 오폭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이날 한 신문에 관련 보도가 실린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사과는 지난 1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지역에서 미군의 오폭으로 자국민 1명과 이탈리아인 1명이 사망한 데 대한 것이다.

미군의 민간인 오폭은 자주 있는 일이다. 다만 그것이 늘 인권단체들의 문제 제기였고, 미국 정부는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공격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암살 때처럼 오바마가 직접 승인한 것은 아니었고, 과거 포괄적으로 승인해둔 지침에 따라 군 또는 정보당국이 자체 판단으로 실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오바마로서는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미룰 수도 있었고, 대테러전 과정에서 수반되는 ‘부수적 피해’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구호요원을 인질로 붙잡은 알카에다의 행동을 부각함으로써 책임을 외부에 떠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모든 대테러작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전쟁의 포연 속에서 치명적 실수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잔인한 진실이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구별되고, 예외적인 국가인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실수에서 배우려는 태도 때문이다.”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처 : 경향DB)


오바마의 언행은 권력자로서는 과도하게 결벽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현명할 때도 있다. 정부에 대한 비난 일색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오바마의 직접적이고 빠른 사과로 전장에서 무인기 사용에 대한 이성적 토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막을 수 있었던 대형 참사, 주변의 부패 스캔들에도 대통령이 모호한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바람에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이 유행하고, 토론을 통한 제도 개선은커녕 갈수록 나빠지는 한국 상황을 생각하면 오바마의 태도는 부러울 뿐이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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