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발목 잡는 ‘안미경중(安美經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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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발목 잡는 ‘안미경중(安美經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8.

ㆍ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 안일한 인식이 무능외교 불러
미·중 사이 균형 유지 위해선
다자관계로 안전판 확보해야


박근혜 정부가 외교분야 성과를 자랑할 때 흔히 했던 말이 “한·미 동맹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한·중 관계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 정세는 정부의 이 같은 자랑을 무색하게 만든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중이 가까워진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 미·일 주도 안보협력 틀에 한국이 가담하지 않도록 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관계 진전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중국이 북핵이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등의 핵심적 사안에서 여전히 한국과 충돌하는 것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보수층 일각의 주장이다. 이들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미국의 사드 한반도 배치를 교환함으로써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하지만 한·미 군사동맹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중국에서는 돈만 벌어들이면 된다는 단순하고 안일한 인식이 현실에서도 작동한다면 한국 외교가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 같은 방향이야말로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의 외교다. 자칫 미·중 모두에게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집권여당 대표마저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3월 부산 한국해양대 토크쇼에서 “안미경중, 안보는 미국의 핵우산 속에 들어가야 하고 경제는 중국과 잘 교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은 김 대표가 같은 자리에서 “핵실험을 2~3번 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게 국제관례이므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고 한 황당무계한 발언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으나 내용면에서는 북한 핵보유국 발언보다 훨씬 심각하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미·중이 갈등 관계여도 문제지만 반대로 미·중이 협력관계로 돌아서고 동북아 문제를 미·중 협력의 틀 안에서 해결하게 되는 것도 한국에는 재앙이다. 코끼리 두 마리가 사랑을 하든 싸움을 하든 잔디밭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이 이 같은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양자관계·동맹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 다자협력체 차원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미·중·일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 다양한 형태의 다자 네트워크를 여러개 만들어 안전판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태도와 정확한 상황판단은 기본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안보 대책 당정협의 시작에 앞서 전화 통화를 위해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나같이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안미경중 같은 한가한 주장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지금은 한국 외교가 논란을 일으켰던 윤병세 장관의 말처럼 “고난도 외교 사안의 고차방정식을 1·2차원적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연연하지 말고 뚜벅뚜벅 갈 길을 가야 할 때”다.


유신모 정치부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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