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핵보유국’과 한국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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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사실상 핵보유국’과 한국의 대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2. 20.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나라는 1967년 이전에 핵실험을 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국뿐이다. 현행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는 이들이 가진 핵만을 합법으로 인정한다. 인도·파키스탄이 처음 핵을 개발했을 때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NPT 장외에 있는 이들을 어찌할 수 없어 결국 제재를 해제했고 이들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여기서 ‘사실상(de facto)’이란 ‘합법은 아니지만 제재를 받지 않는’이라는 의미다. 


이제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또 미국이 북한 비핵화 대신 핵물질이 다른 나라로 퍼지지 않도록 확산 방지에만 주력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려면 국제사회가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고 제재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인도·파키스탄과 경우가 다르고 현재 국제질서도 이들이 핵을 개발할 때와 다르다.


인도·파키스탄은 애초부터 NPT 밖에 있었지만 북한은 NPT에 가입해 핵기술을 전수받은 뒤 탈퇴했다. 또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가진 나라가 50여개국에 달하는 지금은 비확산의 중요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진 상태다. 이 상황에서 북핵을 인정하면 NPT 체제는 무너진다. 북핵 문제는 북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세계 공멸로 이어질 수 있는 도화선이다. 

평양 시민들이 NPT 탈퇴 지지를 위해 모여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DB)


미국이 이런 북한 핵을 인정하고 확산만 막으려 할 것이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백악관이 핵물질을 확산하게 되면 금지선을 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을 때도 한국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북핵협상 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수도가 터져 오물이 쏟아질 때 당신은 가장 먼저 뭘 하겠는가. 온 동네에 오물이 퍼지지 않도록 펜스를 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터진 곳을 막고 펜스 안에 고인 오물을 퍼낸 뒤 재발 방지를 위한 보수작업까지 마쳐야 일이 끝난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국제정치에서 ‘확산’이라는 용어는 핵물질이 퍼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핵보유국이 핵무기를 늘리는 것도 확산이고, 핵비보유국이 핵물질을 갖는 것도 확산이다. 북한 핵 자체가 이미 심각한 확산이다. 따라서 ‘비핵화를 포기하고 비확산에 주력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북한 핵물질 확산을 막는 게 급선무지만 비핵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문제는 이미 핵무기 대량생산 단계까지 간 북한을 비핵화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 모른다는 것이다.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그 기간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을 나라는 한국이다. 이제 한국민들은 북핵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국가의 미래는 물론 실생활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훗날 파키스탄 대통령이 되어 핵개발을 주도한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1965년 “장차 인도가 핵을 가지면 우리는 풀만 먹더라도 핵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파키스탄보다 뒤늦게 핵개발에 뛰어든 북한은 더 힘든 길을 걸었다. 북한은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은 고난의 행군을 거쳐 핵무장에 성공했다. 이런 북한을 비핵화하려면 필사의 각오가 필요하다. 이제 북핵 문제를 회피하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버리고 국민적 의지를 결집시켜 죽기살기로 매달려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비핵화를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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