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은 무책임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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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핵무장은 무책임한 환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3. 20.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simon@kyunghyang.com


북한, 한국의 핵무장론자, 그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감축 계획에 반대하는 미국 보수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핵무기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강경파들은 오바마가 일방적으로 핵감축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로 미국의 침략을 막고 한반도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핵무장론자들은 북한이 핵을 가진 이상 한국도 핵으로 무장해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한다.


이게 모두 맞는 말이라면 핵무기는 인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할 만하다. 전 세계의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갖고 서로를 견제하면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역사가 말하고 있다. 


핵무기가 전쟁에 사용된 것은 초창기 미국의 핵독점 시대 한 번뿐이었다. 이후 삼엄한 냉전시대를 지나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천개의 핵무기는 한 개도 터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핵무기의 전쟁 억지 효과를 주장하는 데 가장 유용한 근거로 활용된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핵보유국 간 전쟁 위기로 인류 멸망의 공포를 몰고 왔던 적도 있고 핵보유국이 전쟁에 휘말린 적도 많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그린 정치 스릴러 영화 'D-13' (경향신문DB)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소 양대 핵강국은 전면전을 불사하고 충돌했다가 천행으로 위기를 넘겼다. 서로 핵무기를 겨누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재래식 무기로 수차례 국지전을 벌였다. 핵보유국이 선제공격을 당한 사례도 있다. 욤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됐다. 아르헨티나도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겁도 없이’ 핵보유국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75일간이나 교전했다. 핵보유국끼리 핵무기 사용을 상호 견제할 수 있다거나, 핵을 갖고 있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은 환상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전쟁이 터지고 핵무기가 동원되는 극단적인 상황은 냉철한 계산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핵전쟁은 우발적 사고·통제 불가능한 위기의 연쇄상승 등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핵무기가 많아질수록, 핵보유국이 늘어날수록, 핵통제 체계가 느슨해질수록 핵전쟁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핵보유국의 핵감축이 비확산을 촉진하고 핵전쟁 위험성을 감소시킨다는 명백한 인과관계를 공화당 보수파들은 애써 외면한다. 또 북한의 주장대로 자신들의 핵무기가 한반도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한다면 북한이 핵무장하기 전 60년 동안 남북이 정전체제에 의존한 채 기술적으로는 전쟁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충돌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한국의 핵무장은 공멸 가능성만 높일 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의 핵무장론자들이 주장하는 ‘공포의 균형’은 상대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정상국가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북한을 ‘미친 개’에 비유하는 핵무장론자들이 ‘공포의 균형’을 내세우는 것은 미친 개와 이성적으로 교감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핵무장론자들에게 지난 20년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북한이 망하기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고작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동반 핵무장’이고 ‘공포의 균형론’이라면 이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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