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축구 권력’ 부패 고리 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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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축구 권력’ 부패 고리 끊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6. 7.

앓던 이가 빠지듯이 국제 스포츠계에서 부패의 상징이었던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5선에 성공한 지 며칠 만에 사임했다. FIFA의 간부로 축구 권력의 커리어를 시작한 블라터는 1998년 처음으로 회장에 당선됐고, 이후 17년간 축구의 세계를 주무르면서 종신 집권의 탄탄대로를 만들어왔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월드컵 개최지나 스폰서 선정을 둘러싼 부정부패의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축구라는 스포츠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악화돼왔다.

이제 블라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지만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블라터의 사임을 계기로 세계 축구의 거버넌스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어떤 제도에서나 장기 집권은 권력 남용과 부정부패를 불러온다. 이번 FIFA 부패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사들 역시 오랜 기간 동안 세계 축구계의 권력을 누리면서 구조적인 부패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활용해온 사람들이다. 제도적으로 회장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더 나아가 각 대륙 연맹이나 국가별 협회의 거버넌스 제도에서도 지도부의 민주적 선출, 임기 제한, 투명성 제고 등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각 국가의 협회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이들이 참여하는 국제 차원의 선거 결과는 뻔하다. 과거 블라터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려 계속 회장에 당선되면서 세계 축구를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회원국 대표의 지원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5선에 성공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돌연 사임했다. _ AP연합


얼마 전 FIFA 회장 선거에서 블라터에게 반기를 들고 개혁 세력의 상당한 지지를 얻은 후보는 혁신적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요르단의 왕자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계를 좌우하는 세력은 중동 산유국의 왕실 세력이다. 이들은 권력층이 독점하는 오일 머니를 앞세워 유럽의 유수 축구 클럽을 사들이고 월드컵 개최권도 집어삼키면서 세계 축구에서 ‘돈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비린내 나는 생선을 피했더니 썩은 생선의 악취를 풍기는 고약한 시스템이 등장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오랜 민주주의의 고장이자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의 사정도 녹록하지 않다. 비판적인 언론이 축구협회의 운영이나 행동을 예의주시한다는 점에서 중동보다 투명성은 높다. 하지만 유럽 축구계도 부정부패나 비리, 각종 이권의 암거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블라터의 후임을 노리는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은 2010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주관한 카타르 왕세자와의 만남을 가진 뒤 카타르 월드컵 개최를 지지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카타르 스포츠 용품 회사에 사장으로 취직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에 블라터 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미국 뉴욕 검찰과 스위스 당국의 부패 관련 수사 압박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국내법을 국제적으로 적용해 국제 스포츠의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을 조사해왔다. 특히 미국의 사법당국은 약물과 관련, 투명성을 제고해 높은 기준을 세우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번 미국의 수사와 압박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은 축구의 중심인 유럽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패 문제를 축구 주변국 미국이 강한 검찰 권력으로 해결해준 셈이다. 스위스 역시 자국 은행을 통해 국제 부호들의 탈세나 돕고 FIFA와 같은 기구의 돈세탁에 동원되는 한심한 나라라는 국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스위스가 뒤늦게 러시아와 카타르 월드컵 결정에 대한 수사에 돌입해 FIFA를 압박하는 이유다. 블라터 이후 축구 거버넌스가 얼마나 더 깨끗하고 투명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게임 못지않게 경기장 밖의 축구 정치에 큰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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