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테러·내전, 그리고 국민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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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테러·내전, 그리고 국민국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31.

지난 30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지역의 한 시장 인근 이슬람사원에서 폭탄이 터졌다. 최소 26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시리아에서는 정부군의 ‘통폭탄’ 공격으로 민간인 70명이 사망했다. 29일에는 이슬람국가(IS) 추정 테러세력이 사우디의 이슬람사원과 이라크의 호텔 두 곳을 차량폭탄으로 공격했다.

테러와 내전 그리고 생활고에 지친 사람들은 나라를 버린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한다. 29일 하루에 이탈리아가 지중해에서 구조한 난민 수가 4200명이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유럽 땅을 밟지 못한다. 국제이주기구(IOM)는 현재 난민 수가 50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는 오랫동안 테러, 전쟁, 내전 그리고 난민 사태를 겪었다. ‘화약고’ 혹은 ‘분쟁의 종합세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1948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에서 시작해 현재는 시리아, 리비아, 예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이 사실상 내전 상태에 있다. 그리고 IS와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이슬람 종교다. 새뮤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이슬람의 문명적 정체성이 국제사회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1400여년 이슬람 역사에서 테러가 본격화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에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한 이후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같은 나라에서는 아직 단 한 번의 테러도 발생한 적이 없다.

‘화약고’를 설명하면서 석유가 언급되기도 한다. 석유자원을 놓고 서방의 침탈과 각국의 권력투쟁이 결합했다는 것이다. 1953년 이란의 쿠데타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무함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석유를 국유화하자 미국과 영국이 정부 전복을 위해 쿠데타를 비밀리에 종용했다. 그러나 이 시각은 석유 생산이 없거나 적은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예멘, 시리아 등의 불안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평균적으로 산유국들에서는 내전이나 테러가 적게 발생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마스다르시티 중앙에 에어컨이 아닌 자연 바람을 이용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바람탑(윈드타워)이 세워져 있다. _ AP연합


중동 및 아프리카의 불안정성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을 주는 것은 미진한 국민국가 형성 접근법이다. 현재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은 신생 국가다.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다. 이전에는 리비아, UAE 등이 없었다. 여기에 상당수 국가의 국경은 자연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이 아니다. 서방의 이해에 의해 획정된 국경이었다. 위도와 경도가 국경이 된 나라들도 많다. 인위적으로 국경이 설정되면서 다양한 민족과 부족 그리고 종파가 국경 내에 포함됐다. 국가통합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새로 등장한 집권세력은 국가 통합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물리력으로 신속한 국가 통합을 추구하면서 반발과 저항이 많았다. 이들 저항세력은 모두 테러세력으로 치부됐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이라크는 사실상 3등분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와 알리 살레가 축출된 리비아와 예멘은 분열 양상을 보이다 내전에 빠졌다. 물리력으로 강제적인 국가 통합을 하려는 세력이 사라지니, 부족 세력 그리고 이슬람 세력이 부상해 나라가 엉망이 된 것이다.

국민국가 형성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유럽에서도 수백년이 걸렸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가 화약고가 된 기저에는 이처럼 미진한 국민국가 형성 과정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런 배경에 대해 우리는 너무 간과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는 비교적 쉽게 국민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적인 국경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강력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시각으로만 중동을 보는 것은 아닐까.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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