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멕시코발 ‘막장 학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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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멕시코발 ‘막장 학살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1. 16.

멀리서 들려온 끔찍한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26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 서남부 게레로 주 경찰은 이괄라 시에서 학교발전기금을 모으고 차별적인 고용 관행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인 뒤 귀가하려는 아요트시나파 시의 라울 이시드로 부르고스 교육대학교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버스 안과 주변에 있던 학생 6명이 사망하고 정신없이 피신한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붙잡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 뒤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경찰이 연행한 학생 43명을 한 마약갱단에 넘겨준 것이다. 체포된 갱단 두목은 학생들을 경쟁관계에 있는 갱단의 조직원으로 알고 살해했다고 밝혔다. 멕시코 검찰은 이런 진술을 확보하고 쓰레기 매립지에서 불에 탄 유해까지 수습했지만 외국에서 정밀 확인 작업을 진행하면서 확정 발표를 유보하고 있다. 사건 직후 몸을 숨긴 이괄라 시장 부부를 비롯한 지방 관리, 경찰관, 갱 단원 등 50여명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붙잡혔고 이괄라 경찰서장은 도주 중이다. 이 멕시코발 학살극은 엽기적인 ‘막장 드라마’의 여러 요소를 고루 선보이고 있다.

첫째, 지극히 부인을 아끼는 한 남자의 헌신적 외조. 부인이 주관하는 행사가 학생들의 방해로 차질을 빚지 않을까 염려한 이괄라 시장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는 경찰을 배치해 학생들을 막으려 했다. 시장 부인은 사회복지사업을 담당하는 시청 산하기관의 장으로서 가족 대상 복지 프로그램에 관해 보고할 예정이었다.

둘째, 지방 정부와 국가의 본령에 대한 개념을 망각한 공직자들의 어이없는 행각.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공직을 활용하는 이괄라 시장의 창조적 융합, 아울러 ‘감히 여사님의 연설을 방해하려는’ 학생들을 뿌리 뽑기 위해 법치의 기본을 팽개쳐 버린 경찰의 과잉충성과 강경진압은 어디서 많이 본 수법과 닮아 있다.

셋째, 지방 권력과 갱단이 결탁한 부정부패의 고리. 이괄라 시장이 경찰에 압력을 행사해 갱단이 처벌받지 않도록 했다거나 갱 단원들이 경찰 조직에 침투하도록 도왔으며 심지어 시장과 갱단 두목이 친척이라는 등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더욱이 관리와 갱단의 연계가 지방 차원을 넘어 정부 고위층 인사까지 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확산되었다.

넷째, 유서 깊은 도시 이괄라의 자취를 가볍게 묻어버리는 반역사적 작태. 게레로 주는 멕시코 독립의 영웅이자 공화국의 두 번째 대통령이 된 비센테 게레로의 이름에서 비롯되었고 이괄라는 멕시코 국기인 삼색기의 탄생지였다. 또 이괄라는 비센테 게레로와 합의한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장군이 1821년 2월 독립의 원칙을 천명한 강령을 발표한 뒤 끝내 독립을 이뤄낸 역사의 현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끔찍한 학살과 시신 처리 방식. 멕시코 검찰에 따르면, 갱단은 학생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도록 시신을 불태운 뒤 유해의 일부를 강에 던져버렸다. 이는 1970년대 말 아르헨티나의 ‘추악한 전쟁’ 당시 자행된 사체 유기의 전례를 생각나게 한다.

시위대가 10월 22일 멕시코시티에서 43명의 학생들이 실종된 사건에 항의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도심 행진에는 수만명이 참가했다. _ AP연합


멕시코 곳곳에서는 치안 부재와 지지부진한 수사에 항의하고 유착관계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성난 대중의 연대 행진이 이어졌으며 게레로 주 의사당과 집권 제도혁명당의 이괄라 시 당사가 공격당했다. 몇 해 전 다른 지역에서 실종된 아들의 행방을 찾고 있는 한 여성은 행진에 참여해 이렇게 분노했다. “난 학부모들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겪어야 할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다. 실종된 자녀를 찾는 일은 고사하고 수사만이라도 제대로 해 달라. 이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다만 책임감 있는 정부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과 고통은 당국의 더디고 비효율적인 중복 수사 속에서 절규와 냉소를 낳았다. 그 어머니에겐, 또 우리에겐 기대할 수 있는 책임감을 지닌 정부가 너무나 절실하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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