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미·쿠바의 행복한 새해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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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미·쿠바의 행복한 새해 기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1.

작년 말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은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할 만한 국제뉴스였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희망한 대로 이제 양국이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길 기원한다.

쿠바의 존재는 미국이 주시한 수많은 국제적 관심사 가운데 미미한 편이었지만, 냉전시대의 과장된 공포와 긴장 탓에 위협적인 ‘테러 수출국’으로 과잉 규정되었다. 하지만 1960년 10월 미국의 금수(禁輸) 조치 이후 심각한 타격에 시달린 쿠바인들은 특히 소련 해체 뒤 ‘특별시기’에 평소 임금의 60%만 받거나 일자리가 없어 집에 머물고 영양실조와 물자 부족을 겪으며 곧 붕괴할 듯 보이는 체제를 힘겹게 유지해왔다. 피델 카스트로가 2006년 무렵 한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쿠바계 미국인들이 혁명 정부에 몰수당한 옛 재산권을 회복하고자 소송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헬름스-버튼 법이 1996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뒤 쿠바인들의 칼로리 섭취와 단백질 소비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따라서 적잖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했고 쿠바 정부는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구호 속에서도 생존에 필요한 실제적 해법을 모색해 외국인 투자자, 자국 출신 망명자, 관광객을 받아들이며 내국인들의 자영업까지 허용했다. 결핍과 고난의 행군 가운데 쿠바는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평균수명, 문자해독, 교육이수, 보건의료 수준을 성취했고 2005년 강력한 허리케인 윌마가 아바나를 강타했을 때 인상적으로 드러난 효과적인 대처와 ‘안전의 문화’는 두 달 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은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미국 정부로선 유럽의 모든 국가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해 180개국이 쿠바 봉쇄정책에 반대하는 현실과 이중 잣대 논란에 부담을 느꼈을 법하다. 또 오랜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2003년에 미국이 쿠바의 최대 식량 공급국이 되었다는 역설과 외부의 압박에도 카스트로 체제에 대한 쿠바인들의 지지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양국의 외교관계 정상화 선언 직후 쿠바계 미국인들의 근거지인 마이애미에서는 ‘음모’ ‘테러리스트’의 영문 표기가 잘못된 팻말을 든 나이든 쿠바 출신 망명자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오바마가 중요한 양보를 얻어내지 못한 채 침몰하는 쿠바에 생명선을 제공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사설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50년 넘게 실패한 정책을 폐기했다고 주장할 테지만, 실제 그는 50년 넘게 실패한 정권과 생명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반대 여론을 넘어선다면 1961년 단교 이래 현실적 필요에 따라 1970년대 말 양국의 수도에 설치된 권익사무소는 곧 대사관으로 격상되고 미국 정부는 쿠바의 테러지원국 지정 재검토, 자국인의 여행과 송금 제한 완화, 통신망 확대, 금수조치 해제 등 후속조치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미국 농산물업계가 기대하듯 쿠바 수출과 수익이 늘어나고 쿠바인들은 부족한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 자재를 더 쉽게 구하게 될 것이다. 또 쿠바의 정보통신망이 개선돼 현재 세계 최저 수준인 인터넷 접속이 늘어나고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등 유명 체인점의 개장과 더불어 높은 의료비에 시달리는 미국인들의 쿠바 의료 관광이 성사될지도 모른다.

페루의 주술사들이 29일 수도 리마의 해변가에서 미국 성조기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얼굴 사진을 든 채 악기를 연주하며 의식을 치르고 있다. 이들은 연말마다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러왔는데, 올해 행사에서는 2015년 미국·쿠바 관계가 더 나아지길 기원했다. _ 로이터


강압과 따돌림보다 포용을 택한 세계 최강국의 대담한 결정이 새해를 맞아 빛을 보게 되길, 그리하여 4월의 제7차 미주정상회담에서 훈훈하고 열의 있는 분위기가 펼쳐지길, 그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십년 전으로 후퇴하는 듯한 한반도의 현실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남겨주길 기대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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