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들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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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그들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쏘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8.

프랑스 도심에서 무장 괴한 3명이 지난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의 편집국을 습격, 이 잡지의 전 편집장과 유명 만평가·기자·경찰 등 12명을 살해했다. 이 주간지는 정파와 종교를 떠나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슬람교는 물론 기독교, 유대교에 대한 성역 없는 풍자를 통해 세상을 조롱하는 걸 편집 방침으로 삼고 있다. 아마 괴한들은 만평가와 기자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모독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현대 문명에 대한 난폭한 유린일 뿐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당신을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견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려는 행동은 이런 관용의 정신을 따르는 프랑스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럽의 중심부이자 자유·평등·박애의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작은 9·11 테러라고 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인 언론사를 파괴하려 했다. 세계가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7일 밤 미국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 운집한 시민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로 숨진 만평가들의 눈을 담은 대형 사진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_ AP연합


샤를리 엡도의 풍자가 지나쳤다는 평가도 있다.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 이슬람교를 믿는 동료 시민에 대한 예의가 있었다면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잡지의 과잉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보통 시민의 입장에서든 무슬림의 관점에서든 이 잡지를 비난하고 반대할 수 있다. 그것 역시 온당한 일이다. 그런 토론과 논쟁 역시 민주주의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나친 표현이라고 해도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민주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살해 위협 때문에 표현의 욕구를 스스로 억압해야 한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그걸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위축되어도 좋은 게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무슬림 혐오가 증폭되는 것 역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것 또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번에 희생된 전 편집장이자 만평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는 “테러 위협에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 쪽을 택하겠다”고 할 만큼 강한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신념 대 신념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신념을 총으로 표현하는 건 민주적 방식이 아니다. 테러리스트들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쏘았다. 민주주의가 죽으면 평화도 사라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위한 세계적 연대에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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