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중동 공존의 모델은 ‘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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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중동 공존의 모델은 ‘요르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4.

지난해 말 한·중동협력포럼 참가를 위해 요르단을 다녀왔다. 긴 여정 끝에 내린 수도 암만 공항에서는 크리스마스 환영 문구가 우리를 반겼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도 이슬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성자이지만, 아랍 세계의 중심부에서 이런 광경은 무척 드문 일이다.

도심에는 요르단의 상징물인 킹 압둘라 1세 모스크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연푸른 돔을 가진 이슬람 건축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놀랍게도 길 맞은편에는 십자가가 선명한 콥틱 기독교회가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당당히 서 있다. 느보산으로 향하는 마다바 지역에서는 많은 숫자의 교회가 다양한 모습으로 이슬람 모스크와 나란히 한 하늘을 공유하고 있다. 비잔틴 시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마론파 교회, 칼데아 교회,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틱 교회 등 어떤 서구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오랜 역사를 가진 초기 기독교회들을 암만 중심부에서 만난다는 것은 의외였고 감동이었다. 국민의 92% 이상이 이슬람을 믿고 있고, 6%가 기독교인들이지만 아직 요르단에서 심각한 종교적 갈등 소식을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다.

요르단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한 요르단 교회 지도자는 공존의 비결을 묻는 나의 질문에 아주 간단하면서도 핵심적인 답변으로 나를 숙연케 했다. “상대의 종교를 존중하고, 각자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자세, 자신의 이념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4년이 지난 재스민 혁명으로 이집트, 튀니지, 예멘, 리비아 등 독재정권이 하나씩 무너졌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내전 상태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아랍 왕정 국가들도 혁명의 확산에 노심초사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석유도 없고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 요르단 왕가만은 아직 건재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에서도 요르단 왕가의 전복 가능성은 아주 낮게 나타난다. 물론 이런 결과에는 아랍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큰 배경으로 작용한다. 지난 4년간의 혁명으로 얻어진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결실인가? 본질적인 의문들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더욱 힘들어졌고, 치안이 악화되어 마음 놓고 집 밖을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수백년간 함께 살아온 이웃들이 이념과 부족 갈등으로 찢기고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는 상황도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 공동체 정신 속에 형제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지켜온 1400년 이슬람 전통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덜 민주적 정권이라도 리더십이 건재하고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사회가 전쟁이나 무정부 상태의 혼란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요르단 자타리의 시리아인 난민촌에서 지난 1월 한 남성이 아이를 안고 걸어가고 있다. 내전이 터진 후 3년간 60만명 가까운 시리아 사람들이 요르단 난민촌으로 넘어왔으며, 이 중 12만명이 자타리에서 살고 있다. _ AP연합


왕실을 향한 국민들의 욕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바로 압둘라 국왕 자신이었다. 그는 무함마드의 직계 후예로서 찢어진 아랍 이슬람 사회를 회복하는 상징적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전쟁으로 오갈 데 없는 이라크와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요르단 인구 670만명에 난민을 무려 400만명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난민으로서가 아닌 국가 건설의 동반자로 받아들였다.

몇 해 전 요르단에 왔을 때 왕정의 독선과 부패와 무능에 찌든 관료들을 질타하던 국민들의 모습은 크게 줄어들었다. 서로 다른 종교와 부족, 이념과 가치의 차이까지를 받아들여 공존과 화해를 기본정신으로 지켜온 요르단 국민들의 위대함이 혁명의 혼란 속에서 안정과 자유를 지키는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여행이었다. 2015년 중동의 화해와 평화가 이러한 요르단 정신에서 비롯되었으면 좋겠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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