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내일의 일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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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특별기고]내일의 일본을 생각한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5.

ㆍ평화헌법 9조 지키는 ‘9조회’ ‘다카스 나오미’ 노벨평화상에 공동 추천하면서

지난해 12월26일 미국·일본·한국 세 나라 사이의 군사정보보호 약정(MOU)을 곧 교환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정부는 2012년 6월에도 한·일 양국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려다 국내 여론 악화로 서명 두 시간 전에 취소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국무회의에 비공개 긴급안건으로 올려 변칙 처리하려다가 ‘비밀협정’을 맺으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번 3국 약정은 미국의 주도로 지난해 4월쯤부터 본격화되었다. 이 약정은 협정이 아니어서 국회 논의와 비준을 거치지 않았다.

미국을 축으로 하는 3국 약정도 대중 방어벽을 구축하는 데 필수단계일 것이다. 한일협정 50주년을 맞기도 하는 한국에는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다. 1965년의 한일협정이 국교수립과 경제협력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2015년은 일본과 군사협력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그 막을 열기 때문이다.

■ 아베 정권 집단적 자위권 결정, 한국 등 자극

국면을 일변시킨 것은 일본의 아베 총리였다. 지난해 7월1일 내각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기로 결정했다. 즉각적 반응을 보인 나라는 한국이었다. 지난 11월30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규탄결의안을 재석 236인 가운데 찬성 235인, 기권 1인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시켰다.

보통국가로 간다고, ‘적극적 평화주의’라고 집단적 자위권을 변호하고 있지만, 위안부 동원에는 강제성이 없었다, 중국 난징에서도 30만명이 아니라 5만명밖에 죽이지 않았다, 731부대도 과장됐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못할 이유가 뭔가 등등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식민지배 피해를 축소-조작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군사대국화, 평화헌법 9조의 폐기 프로그램도 밀고 나간다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규탄결의안을 채택하고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하고 항의결의문도 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다고 변할 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보기보다는 결코 강한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선 평화헌법 개헌이나 원전재가동 등 주요 현안에서 일본 시민 50%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극우세력을 제외하고는 우호 세력이 별로 없다.

우리의 역량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우선 일본 안의 평화-민주주의 세력과 연대하고, 전전 체제로 돌아가는 것에 불에 덴 것처럼 경련하는 세계의 평화운동 세력과 연대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아베 진영을 도울 뿐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의 9조회가 10년째 평화헌법 9조 수호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2013년부터 두 아이의 어머니인 전업주부 다카스 나오미가 자신의 아이들이 다시 전쟁에 희생되는, 전쟁하는 나라로 일본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평화헌법 9조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해달라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와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10일 9조회의 평화헌법 수호강연회와 한국의 6·10민주항쟁 27주년 기념식에서 연대사를 낭독하고 서로 돕기로 했다. 연대 필요성 제기에 따라 필자 등이 개헌에 반대하는 일본 정치인들과 시민운동 단체 대표들을 만나 한·일 평화연대와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 측은 일본 측 인사들에게 한국에서 일본 평화헌법 9조에 대한 노벨평화상 추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질의한 바, 한 분도 빠짐없이 찬성하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 한국 원로들, 9조회-다카스 나오미씨 노벨평화상 공동후보에 추천

1월16일 일본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추천 한국위원회는 평화헌법을 지켜온 9조회와 다카스 나오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여 한국 주재 노르웨이대사관에 추천서와 서명철을 전달했다. 지난해 12월18일 국무총리 3인, 국회의장 5인, 대법원장,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장관 4인 등 전직 최고위 공직자 출신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종교인 문화예술인 학자 법조인 시민운동가 등 원로 50인이 일본 평화헌법 9조를 노벨평화상에 추천 서명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야, 보수·진보, 지역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추천사에서 “일본의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한 전쟁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담은 교과서였다”고 평가하면서 “평화헌법 9조가 일본 현 내각의 ‘해석개헌’만으로 껍데기가 될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일본 평화헌법이 무력화될 경우 일본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고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들은 개인이나 단체에만 평화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재단의 규정에 따라 평화헌법 9조를 지켜온 ‘9조회’와 다카스 나오미를 공동수상후보로 추천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을 칭찬하거나 그에 따른 성과를 일본에 돌아가도록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행동에 옮기는 데 큰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군비확장 노선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큰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도 명분 있는 저지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벨평화상 추천운동은 그래서 제기됐다.

■ WCC 사무총장, 도쿄 세계 종교인 대화회의에서 아베에 직격탄


아베 총리에 대한 강력한 반격은 세계 종교계 모임에서 제기되었다. 2014년 12월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평화헌법 9조에 관한 제4차 세계 종교인 대화회의’에서 나왔다. 이 회의의 주제는 ‘9조와 세계평화’였다. 이 회의의 주최자인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총장 올라브 피크세 트베이트 목사는 “올해 7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는 헌법 9조에 대한 정책입장을 채택했다. 중앙위원회는 헌법 9조를 재해석하거나 혹은 변경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도쿄의 YMCA 청년센터에서 열린 종교인 대화회의에는 가톨릭 개신교 불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기관과 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 100여명이 참여했다. 아베 정권의 과거사 역주행의 시정 없이는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세계인들에게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였다.


■ ‘일본 안의 진실’과 ‘세계의 진실’의 충돌, 2015년 역사전쟁 불가피

2014년 12월14일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는 아베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475석 가운데 자민당이 291석을 얻었고 공명당과 의석수를 합치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326석을 얻어 이변이 없는 한 2018년까지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승리를 발판으로 2015년 종전 70주년을 맞아 8월15일 ‘아베 담화’를 발표하여 역사수정주의 행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손보지는 않아도 무력화하려 들지 않을까. 집단적 자위권 발동으로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시켰듯이 말이다.

그러나 종전-해방 70주년을 맞아 ‘일본 안의 진실’과 ‘세계의 진실’이 어긋날 때 일본과 세계의 논쟁과 대립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 역사전쟁의 피해는 온전히 일본 국민 전체에게 돌아갈 것이다. 2015년 1월1일 아키히토 일왕은 신년사에서 일본의 본격적 침략전쟁의 서막인 1931년의 만주사변을 언급했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각시킨 것으로서 이 세기적 논쟁의 향방에 쐐기를 박은 것이나 다름없다.

■ 야권 ‘입헌포럼’, 9조회-노벨평화상운동과 함께 ‘호헌 범국민연대’로 갈까


지난 2004년부터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9조회의 호헌운동이 비록 일본사회의 원로 지식인들이 주도했어도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호헌의지를 단호하게 보이지 못함으로써 대중적 신뢰를 잃고 자민당에 정국주도권을 넘겨줬다. 평화헌법을 지키느냐, 개헌을 통해 재군비노선으로 가느냐는 국가체제 개편과 관련된 전후 최대 쟁점이었다. 곤도 쇼이치 민주당 의원이 대표인 입헌(立憲)포럼이 평화헌법 9조 노벨평화상 시민운동 및 9조회와의 연대활동을 펼침으로써 ‘호헌 범국민연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의 시민운동은 지향하는 목적이 같아도 정치인이나 정치권 운동과는 선을 긋고 초연한 입장을 지킨다. 일본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힘을 모아 평화헌법을 지켜내고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데 성공했다고 상상해본다. 그럴 때 일본시민들은 근대적인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물론 일본 시민들은 선진국 세계시민으로서 격조 높은 덕목을 갖추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그러나 근대 시민사회 형성과정에서 지나간 사회의 족쇄를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 끊어낸 승리의 경험을 아직 가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두 차례 방일에서 만난 여러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대표들은 일본시민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질곡을 깨닫고 벗어나기 위해 참여하고 항의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정치와 시민사회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선명한 정치-사회적 구심체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만약 평화헌법 지키기 운동이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운동의 지도력이 부족했거나 시민사회의 역사성과 책임성을 회피했다는 평가를 뒷날 듣게 될지 모른다.

일본의 시민운동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어느 주제의 운동을 벌이는 시민운동은 다른 분야의 운동과는 연대나 협력을 하지 않고 자신의 운동에만 주력한다고 한다. 평화헌법 9조를 지켜내는 과제가 일본 국가-사회의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현재의 과제라면 여기에 동의하는 힘이 결집되는 것이 급선무다.

그와 비교해서 보면 아베 진영은 지도부, 조직, 미디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태로 호헌운동진영이 아베 진영을 이길 수 있을까. 아베 진영이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장악해도 그 이후에 있을 찬반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킬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평화헌법을 지키자는데 일본국민 50% 이상이 지지하더라도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이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난 이후에도 그 지지도를 유지하리라고 낙관할 수 있을까. 정치에서 이긴 쪽을 따라가는 밴드왜건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난다. 지난 12월14일의 중의원 선거에 야권과 시민사회가 대응할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아베 총리가 정략적으로 미리 해산했지만 내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는 야권의 새로운 진용과 선명한 기치로 시민운동과 함께 대응할 수 없을까.

■ 한-일 평화연대 통한 동아시아공동체 모색

일본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일본과 한국 사회는 공동의 가치를 누리고 살아온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바로 민주주의와 평화였다. 한국의 군사독재시기에 일본인들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사회에도 한국처럼 민주화운동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분단 속에 갇힌 가혹한 군사독재 아래 민주화-평화통일운동을 벌이는 한국의 운동이 지난날 일제 치하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일본인 학자들과 젊은이들이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동북아의 냉전시대라는 한계 속에서도 일본과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소중한 공동의 가치를 키워왔으며 탈냉전시대를 맞아 그 공동의 가치를 근거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전망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대표들이 일본 사회가 종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는 사실에 합의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응할 마땅한 처방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일에 힘을 모아내고 결정을 내리는, ‘선택과 집중’ 문제에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시대는 강대국들만이, 혹은 정부기구만이 국제관계를 열어가는 주역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한 나라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지방분권, 지방 사이의 국제적 교류, 시민사회 사이의 국제연대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한국과 일본의 평화연대가 동아시아 평화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세계사의 흐름이라는 것을 믿어볼 때가 되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냉전-탈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비바람 치는 동아시아의 좁은 공간, 한국과 일본에서 성장한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공동의 가치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싹을 틔우고 있다. 그것이 동아시아 미래의 힘이다. 그 힘은 동아시아 밖의 군사적 개입에 방파제를 쌓기도 하고 동아시아 안의 낡은 시대의 묵은 제도와 관행도 녹여갈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스스로 설 때까지.


이부영 |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대표·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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