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국의 지뢰금지조약 가입 ‘말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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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미국의 지뢰금지조약 가입 ‘말 바꾸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9. 29.

최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미국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타와 협약’에 따라 대인지뢰 사용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반도를 예외로 둠으로써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현안이었던 미국의 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이 이번에도 무산된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재선 이후 계속 검토 중이라면서 곧 가입할 것처럼 소문을 내고, 국제사회의 기대를 모았지만 예상과 달리 가입 불가로 결론이 나고 만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반도에서의 지뢰 사용 필요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미국 정부는 한반도 이외에서는 오타와 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뢰 사용금지 등의 조항을 준수해 실제적으로는 가입국과 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모순되게 말하고 있다.

오타와 협약은 현재 162개국이 가입하고 있고, 많은 국제법들 가운데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국제규범이다. 1997년 유엔에서 이 협약을 만들 때,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을 예외로 해주면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표명했다. 여러 국제법들이 예외 조항으로 무력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서방국가들에 거부당하자, 클린턴 정부는 향후 6년간 재래식 지뢰를 대체할 무기를 개발한 후 인도적인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도 어김없이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방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득불 가입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에 앞서 재임 기간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인도적인 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못한 것이라고 고백하기까지 했지만, 부시 정부는 스마트 지뢰라고 부르는 대체무기를 개발해 실용화하기에 이르렀음에도,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버리고, 오타와 협약의 인도적인 취지를 크게 공감하기 때문에 지뢰 피해의 구원과 지뢰 제거에 대한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면서 한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지뢰경고’ 표지판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출처 : 경향DB)


오랫동안 미국의 결단을 기대하며 기다려온 국제대인지뢰금지캠페인(ICBL) 등 관련 단체들은 실망에 앞서 미국의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인지뢰의 인도주의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 협약에 규정된 모든 의무사항을 준수하겠다면,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오타와 협약의 의무사항이란 4년 이내 비축지뢰 파괴, 10년 이내 매설 지뢰 제거, 타국의 지뢰 제거 등을 위한 기금 출연 등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베트남에서 대규모의 지뢰 제거와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등 세계에서 가장 기금을 많이 출연하는 국가로 자랑하고 있고, 매설된 지뢰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에 비축지뢰를 파괴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거의 완벽하게 협약 가입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의 지뢰 사용을 가입 불가의 이유로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뢰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구태의연한 주장은 전문가들에게는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이미 미국은 재래식 지뢰를 대신해 사용할 자폭장치가 부착된 소위 스마트 지뢰를 대량 생산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다량 구입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신형 지뢰의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뢰의 대체 무기로 인해 구형의 재래식 지뢰의 효용성은 이미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입 불가의 유일한 이유는 ‘오타와 협약’에 가입한다고 해도 10년 내에 100만발 이상의 매설 지뢰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막대한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의 오타와 협약 불가입 선언,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지뢰 사용 필요성 주장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크게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재국 | (사)평화나눔회 대표·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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