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베 ‘위안부 발언’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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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아베 ‘위안부 발언’의 변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29.

일본 아베 정부는 위안부를 인신매매 피해자로 간주하며 군부 등 정부기관의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

그러한 아베 정부의 입장은 역대 내각에서 발표된 담화 즉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 특히 고노 담화 등과 명백하게 배치된다.

지난 4월 말 방미 중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안보 관련 발언 외에 역사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는 것이 한국,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과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의 발언 내용을 보고 느낀 점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언급할 때 상투적으로 사용해온 후렴을 생략했다는 점이다. 즉 고노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해왔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일본 국회에서 야당 인사들이 고노 담화를 계승하느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항상 똑같이 답변했다. 고노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말의 의미는 고노 담화 중에서 계승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당 인사들이 그러면 계승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라고 질문해도 그런 질문은 무시하며 “내가 항상 말하듯이 고노 담화를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답해왔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외국 기자가 아베 총리는 전시 일본 정부가 관여한 성노예 문제에 대해 아직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며 오늘 이곳에서 사과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의 답변 과정에서 인신매매 여성들을 언급, 전시에 많은 여성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라는 말을 하면서 마지막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 그것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명백히 대답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 장소에서 각국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그것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언명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라는 상투적인 구절을 뺀 것이다.

필자는 그 구절을 삭제한 것은 고노 담화 전부를 계승한다고, 듣는 사람이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생각하며, 진일보라고 평가한다.

또한 아베 총리가 미국 기자회견에서 그런 입장 표명을 하기 4일 전인 4월24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일본 중의원 외교위원회 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전체적으로 담화를 계승한다고 할 때 전체적이라는 말은 담화 “전체를”이라는 말이지 어떤 부분은 계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러한 답변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발언을 고노 담화 전체를 계승한다는 입장 표명으로 간주하고, 한·일 양국 간 관계개선을 위해 진지하고 생산적인 노력을 시작할 계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왔다고 본다. 물론 전제가 있다. 한국의 그와 같은 새로운 인식이 오판이었다고 판단하게 될 언동을 아베 총리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 정부가 (관계개선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미·일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무런 조건이나 토를 달지 않고 국제사회를 향해 천명한 언약의 비중을 감안하면 아베 총리가 5월15일 중의원 본회의 석상에서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를 언급해 또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토를 달기는 했으나 고노 담화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앞으로 고노 담화에 대해서 “전체적으로는 계승한다”고 발언하지 않는 한 워싱턴 기자회견에서 국제사회에 발신한 그의 언약이 유효하다고 한국 정부가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위안부 문제가 한국의 대일외교 정책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 외교 전반에 관한 국가 이익 추구라는 기준에서 어느 정도 타당한지 이 기회에 재검토하게 되기를 바란다.


김영진 | 조지워싱턴대 석좌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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