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미군 오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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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미군 오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3. 27.

1944년 9월2일 미 해군 조지 H W 부시 중위는 일본 도쿄로부터 1000㎞ 떨어진 지치지마 섬 상공에 있었다. 그는 폭격기 조종사였다. 사방에서 일본군의 대공포탄이 터지는 가운데 폭격 지점에 이르렀을 때 아래를 살피던 폭격수가 “밑에 아이들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한 바퀴를 돌아 폭격 장소로 되돌아오는 복행을 결정했다. 수분 이상 걸리는 복행은 언제 대공포에 맞을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결국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 비행기가 돌아와 민간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폭탄을 투하한 뒤 급상승하는 순간 대공포탄이 날개에 작렬했다. 기체는 균형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고, 부시 중위는 승무원들에게 먼저 낙하산으로 뛰어내릴 것을 명령한 뒤 마지막으로 자신도 탈출했다. 그는 바다에 떨어져 몇 시간 표류하다 미 잠수함에 의해 구조됐다.

 

미국 41대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일화다. 그는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결심하자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과거에는 폭격 장소에 민간인이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폭격 여부를 결정했지만 전자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니 무엇보다 오폭을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항공기에 의한 폭격은 아주 싸게 먹히고 리스크는 적은 전쟁 수단이다. 지상군과 해군을 위험지대에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는 하늘로부터 사신(死神)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더구나 폭격 대상이 민간인이라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자 전쟁범죄다.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한국에서 수많은 오폭을 저질렀다.

 

그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거점인 이라크 모술에서 2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미군의 대형 오폭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래 미군 공습으로 발생한 민간인 인명피해 가운데 최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상대를 더 많이 죽이는 게 일상인 전쟁에서 아버지 부시의 당부는 실현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쟁통에 민간인을 보호하려고 애쓰기보다 애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도록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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