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김정은 오보 사태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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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자칼럼]김정은 오보 사태가 남긴 것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5. 6.

북한 관련 기사는 가장 쓰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쉽게 쓸 수 있는 분야다. 북한 내부를 직접 취재하기 불가능하다보니 북한 매체가 무슨 보도를 하는지, 중국 등 주변국 움직임은 어떤지 정황 분석과 간접 취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북한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다. ‘팩트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언론 입장에선 취재가 힘든 구조다.


그렇다보니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게 ‘대북 소식통’ ‘정보 소식통’이다. 이 ‘소식통’들은 정부 관계자일 수도,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일 수도 있고, 정치권 인사나 탈북민 단체일 수도 있다. 소식통이 누구냐에 따라 정보의 신빙성은 천양지차이지만 ‘팩트처럼 보이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유용한 루트다. 당사자가 북한이다보니 사실 확인도 어렵지만, 설령 ‘오보’로 드러나더라도 법적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없다. 기자들이 특종과 오보 사이에서 맴돌게 되는 이유다. 


문제는 추측과 미확인 전언이 수두룩한 북한 뉴스가 국내에 미치는 파장은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신변 이상설을 다룬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0일 한 북한전문매체가 ‘김 위원장이 묘향산지구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을 때만 해도 파장이 그리 크진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CNN이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을 받고 위중한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CNN 보도 당일 코스피지수는 한때 3% 가까이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급등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 동선에 대한 설명을 비교적 소상히 내놓았지만 추측성 보도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됐다. 북한 뉴스에 민감한 일본의 한 주간지는 중국 의료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김 위원장이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가정을 전제로 한 ‘~라면’ 기사도 쏟아졌다. 김 위원장의 위중·사망을 전제로 한 후계구도를 예측하는 기사들이다. 이 같은 상황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다’ ‘수술 쇼크로 사망했을 확률이 99%’라는 말을 보태며 정점을 찍었다. ‘국내 매체 보도→해외 언론의 재가공→정치권과 보수 유튜버의 확대 재생산→국내 언론 보도’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사이 한반도 리스크는 고조됐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하고, 북한 매체들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 신변 이상설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더구나 그의 비대한 몸집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증거가 오보에 대한 책임을 덜어줄 순 없다. 더구나 대북 정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정부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위중설·사망설을 다룰 정도라면 반박하기 힘든 수준의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익명의 소식통과 외신 보도에 기대 무분별한 기사를 쏟아낸 언론의 의도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클릭 수를 높이고 싶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어쨌든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의 위상은 또 한번 바닥을 확인했다. 진실 보도가 어렵다면 가짜뉴스만이라도 쓰지 말자.


<이주영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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