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만에 끝난 낭트의 크레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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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나흘 만에 끝난 낭트의 크레인 시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2. 19.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프랑스 낭트, 한 40대 남자(세르주 샤르네)가 조선소의 고공 크레인 위에 올라갔다. 다음날 또 다른 남자가 연대를 위해 크레인에 오른다. 해고당한 수백명의 노동자의 복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 후, 전 아내가 데리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만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세르주는 전 아내의 동의 없이 아들을 두 차례에 걸쳐서 데려간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접견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다. 


세르주 등의 고공 시위 이틀 뒤, 총리는 법무부 장관과 가족부 장관에게 이들이 속한 ‘이혼한 아빠들의 협회’를 찾아가 이들의 요구를 듣고 대안을 논의할 것을 지시했고, 해당 지역의 시장은 아들을 만날 권리를 박탈당한 첫 번째 남자에게 당장 다음날, 법원의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즉석 청원서를 제출할 것과 변호사를 제공해줄 것을 약속했다. 총리의 지시가 떨어진 바로 다음날, 법무부 장관과 가족부 장관은 이혼한 아빠 단체를 만났고, 세르주는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이 모두는 나흘 만에 이뤄졌다. 


황당한 다혈질 아빠의 개별적 에피소드일까? 고공 시위에 나선 두 아빠 뒤에는 이들을 지지하는 이혼한 아빠들의 협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들의 짧고 굵은 고공 시위는 나흘 만에, 이혼한 아빠들의 박탈당한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연대를 위해 크레인에 올랐다가 하루 만에 내려온 니콜라 모레노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시위는 지극히 평화로운 것이지만, 현재 적용되는 법은 이혼한 아빠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폭로했다. 이혼한 아빠들에게 주어지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날수는 한 달에 4일뿐. 상호간에 협의가 되면 더 늘어날 수 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아빠들이 얻을 수 있는 최소 날짜는 격주 주말뿐이다. 


낭트의 조선소 기중기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는 두 아빠는 프랑스의 가족법의 희생자라고, 이혼한 아빠의 권리를 지키는 협회 ‘SOS아빠’(회원 수 1만6000명)의 회장 파브리스 메지아스는 말한다. “우린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단체입니다. 우리는 이혼 후,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할애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공평하지 못한 가족법으로 인해, 지금 프랑스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아빠들의 수는 무려 130만명이나 됩니다.” 


프랑스에서 이혼한 아빠의 권리를 찾는 협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69년이다. 프랑스 전역에 거센 사회개혁의 바람이 불던 1968년으로부터 불과 1년. 이혼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이혼한 아빠들이 나눠가져야 할 자녀들에 대한 권리는 유보되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엄마가 돌보는 것이고, 남자들은 양육비를 보내줄 수 있는 대상으로만 간주되었던 것이다. 


두 남자의 크레인 시위는 낭트에서 20일에 예정되어 있는 전국 규모의 이혼한 아빠들의 권리를 위한 집회를 앞두고 이뤄졌다. 이 집회를 주관하는 SVP아빠 협회 회장은, 이혼을 하더라도 아빠와 엄마가 똑같이 아이를 돌볼 수 있기를 주장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르 파리지앵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1.7%의 응답자는 이혼할 때, 아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진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DB)


이혼한 프랑스 아빠들의 아이를 향한 들끓는 마음은 진정 절박해 보였지만, 이 뉴스에서는 어쩐지 훈훈한 기운이 맴돌았다. 수백명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무려 309일을 고공 크레인 농성을 해도, 총리는커녕 관계 장관들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참으로 대단한 정부를 가진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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