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프랑스 극우정당과 통일교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목수정의 파리통신]프랑스 극우정당과 통일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4.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선거철이면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긴 이름의 정당이 전국에 한군데도 빠짐없이 후보를 내고, 고스란히 단 한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기를 반복한다. 알고 보면, 아니 알고 볼 것도 없이 그 당은 통일교가 만든 당이다. 그 긴 세월, 당선자 한번 내지 못하고, 계속 선거비만 탕진해오는 것을 보면, 국내에서 그들은 그다지 큰 정치적 힘을 키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럽 땅에 발을 딛는 순간, 그 안개같이 잡히지 않는 종교 통일교의 실체가 좀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은 남한의 대통령이 누군지는 아무도 몰라도 소위 ‘섹트 문(Secte Moon)’은 다 알고 있었다. 여전히 대놓고 교회를 크게 쌓아올리거나, 길거리에서 요란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 특유의 잠행 포교로 사회 곳곳에 스며 있었던 것이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의 사망을 즈음하여, 르몽드지는 통일교와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맺어온 끈끈한 관계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1980년대부터 국민전선과 통일교가 동맹관계를 이루면서, 프랑스 내에서 동반성장을 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열렬한 통일교 신도이며, 유럽 내 조직책의 책임자 역할을 오래 해온 피에르 세이락이 그 가교역할을 했다. 국민전선의 대표, 장 마리 르펜은 문선명과 통일교가 가진 국제적 조직망, 그 영향력에 단박에 큰 매력을 느꼈고, 승공 혹은 반공이라는 슬로건으로 의기투합했으며, 통일교의 막강한 자금력이 그들의 결합을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1988년 대선 직전, 언론에 뿌려진 장 마리 르펜과 로널드 레이건이 함께한 사진. 마치 르펜이 백악관에 공식 초대되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그 한 장의 사진은, 통일교의 2인자 박보희가 베푼 오찬에 초대된 두 사람을 박보희가 소개시켜 주면서, 정중하고 다정하게 르펜을 맞이하는 레이건의 모습이 연출되면서 만들어진 정치적 착시현상의 결정판이었다.


그리고 국내에서와 달리 통일교의 막강한 재정적, 인적 지원은 국민전선의 의회 진출을 실질적으로 돕는다. 피에르 세이락 자신이 국회의원과 유럽의회 의원, 도의원 등에 국민전선으로 연거푸 당선되면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행세해왔고, 더불어 자신의 유럽 내 통일교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열정적으로 해나갔다. 


국민전선 출신의 전직 의원에 따르면 1986년 국회의원 선거 때에만도 통일교로부터 3000만프랑(약 60억원)의 자금이 국민전선에 지원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통일교와 국민전선의 끈끈한 관계는 세이락이 국민전선을 떠남으로써 소원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자금력을 앞세운 통일교의 잠행 스타일의 포교는 잦아들지 않는다. 


올해 초, 팔려고 내놓았던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있던 우리 집을 네 사람이 한꺼번에 보러 온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17세기에 지어진 우리 집의 지금까지 역사와 지하실 내부 구조까지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그 사람들은 통일교 파리지부 신도였다. 약간의 한국말 실력까지 내 앞에서 과시하던 그들은 신도들끼리 만나서 공부하고 토론할 사랑방의 역할을 할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사전 뒷조사를 철저히 하고 그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고 나타났던 그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을 사지는 않았다. 


프랑스 구글에서 섹트라고 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섹트 문이다. 그만큼 이들은 유럽사회에서 음성적인 섹트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구성한다. 국민전선의 극성스러운 선동정치 이면에 섹트 문이라는 자금줄이 있었다는 사실. 서로의 진정한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