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엘리트 학생들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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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랑스 엘리트 학생들의 '탈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3. 13.


유럽 최고 MBA로 꼽히는 HEC파리, 프랑스 최고 엘리트 양성기관 에콜 노르말, 시앙스포 등. 미래가 보장된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어느 날 갑자기 탈출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에서 고학력 엘리트들의 잇단 학업 중단사태를 종용하는 원인은 학비 마련에 대한 부담도,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도 아니다. 경제위기에 즈음하여 붕괴하기 시작한 고도성장의 신화, 그 허망한 신자유주의 시스템 위에 얹혀 착취에 공모하는 행위에 대한 염증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사회 곳곳에서 징후를 드러내던 탈성장의 한 현상인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부모의 기대와 손에 잡힐 듯한 상류사회의 삶을 저버리고, 이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 달려간 곳은 대부분 수공업자로서의 새로운 삶이다. 교수와 번역가의 미래를 꿈꾸며, 소르본대학에서 문학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피에르는, 어느 날 가지고 있던 책들을 모두 헌책방에 팔아치우고, 목수가 되기 위해 콤파뇽(국립장인양성기관)을 찾았다.

소르본 대학 앞 광장 분수대에서 신문을 보며 의견을 나누는 두 대학생 I 출처 : 경향DB


손으로 직접 만져지는 재료들을 통해 구체적인 결과물을 완성해내는 기쁨. 인간의 냄새가 느껴지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 그가 바로 목말라 하던 일이었다. 현재 그는 목수의 일과 글쓰기, 여행을 겸하여 누린다. 지난 소르본대학에서의 시간을 후회하는가? 그렇진 않다. 아무 쓸데없는(?) 수많은 지식들을 얻을 수 있던 그 시간을 그는 여전히 소중하게 여긴다. 다만 대학에서 얻은 풍성한 지식은 그에게 값진 정신의 양식으로 남았고, 그 자체로 큰 의미라고 여긴다. 그것이 굳이 학위로 입증되어야 하고 직업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뿐.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법대에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던 한 여학생은 적성과 맞지 않는 이 길에서 아무런 기쁨도 발견하지 못하다가, 네가 추구하는 가치는 뭐냐는 친구의 한마디에 무장해제되었다. 몇 달간 고민한 끝에 자신이 가장 기쁨을 느끼던 순간이, 친구들에게 마사지를 해주던 때였음을 자각하고 인도로 날아가 마사지를 배웠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통계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의 여러 장인협회들은 그들에게로 달려오는 고학력자들의 숫자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하나의 붐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해 준다.

이것은 일종의 도피일까? 사회학자 엠마누엘 아바디에 의하면, 이들이 새로운 길로 접어들 때 선택하는 직업에는 일관성이 발견된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져왔던 고전적인 직업들이며, 동시에 손을 통해 구체적인 대상을 만지고, 생산하는 일로, 대도시에서도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목수, 제빵사, 세공업, 고급 섬유제작자 등. 똑똑한 인력들의 새로운 유입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각각의 수공업 분야를 현대화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그는 말한다.

파리고등경영대학을 다니다가 제빵사가 되어 제과점을 차린 피에릭은 말한다.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올라서서 오로지 최대 이윤을 취하는 법을 배우던 그 시절에 자신은 스스로를 혐오했다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빵을 구워야 하지만 새벽길을 자전거로 가르며 새소리를 듣고 새로운 빵을 늘 연구해 내는 자신의 삶에서 비로소 평화를 누린다고. 우리나라 귀농 엘리트들이 토로하듯 이들이 투신한 새 영역에도 역시 인간이 빚어내는 갈등과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세상이 만들어낸 성공의 허상을 내려놓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갈망에 답한 자의 단단한 의지와 담담한 태도가 더 큰 삶의 가치를 빚어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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