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표권,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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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외국인 투표권, 지금 당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18.

지난 월요일, 77명의 프랑스 사회당 의원들은 ‘외국인 투표권, 지금 당장’이라는 표제의 성명서를 르몽드에 실으며, 프랑수아 올랑드의 대선공약인 외국인 지방선거권 부여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했다. 


리베라시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회라는 아궁이에 기름을 확 끼얹은 격.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의 숫자는 약 100만명. 전체 유권자 대비 6%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민자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유권자층이 생겨나는 셈이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61%의 프랑스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호의적이다.


 집권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40%대의 형편없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올랑드 정부. 정부 예산 긴축과 세금 증세라는, 뻔한 경제 문제에 대해서만 약간의 움직임을 보일 뿐, 모든 사안에서 굼뜬 모습을 보여 좌우 언론들로부터 “제발 잠에서 깨어나라”는 질타를 받아왔다. 상대적으로 덜 중대한 이슈로 여겨지는 외국인 투표권을 이들이 강경하게 들고 나선 데는, 집권 사회당에 밀려드는 따가운 시선을 사회적 이슈로 모면해 보려는 의도도 다분해 보인다. 실제로 이민자들의 분포가 높은 수도권 지역에서, 이민자들의 참여가 빠진 선거는,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며, 선거 불참자들을 고려하자면, 지방선거에서는 실제 주민의 20%만이 선거에 참여할 뿐이라고 아마디 의원은 지적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가 투표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출처: 경향DB)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당이 30년 전부터 주장해온 묵은 약속이기도 하다. 1981년에 이미, 프랑수아 미테랑이 제시한 110개의 공약 속에서 이를 언급했으나, 14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계속 오른쪽으로 향해가던 미테랑에게 진정한 실천의지는 발휘되지 않았다. 오래된 사회당의 공약을 다시 집어들며 올랑드는, “프랑스 혁명과 세계인권선언의 계승자로서 프랑스의 열린 시민정신에 부합하는 외국인 투표권 부여는 매우 적절한 일”이라 자평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27개의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아직도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12개의 국가에 속한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77명이 힘을 모았지만, 이번에도 쉬운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헌법을 먼저 개정해야 하는 절차상의 문제가 있고, 우파의 반발이 생각보다 강경하기도 하다. 우파 대중민주연합의 코페 대표는,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이 문제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강수를 두며, 대통령에게 이런 공약의 저의를 밝히라고 윽박지른다. 적은 내부에도 있다. 실무부서인 내무부 장관 마누엘 발스는 “국민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문제도,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러니한 건, 발스 자신이 스페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으로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외국인에게 2006년부터 지방선거에서의 투표권을 부여해왔다.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난 사람들에게 국한된 사안으로, 실제로 투표권을 얻은 외국인은 6000여명에 불과. 사회적 파장은 크지 않았다. 중국교포 출신의 남자가 저지른 살인사건이 촉발한 거센 반외국인 정서를 생각해보면, 감히 그 누구도 우리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더 큰 참정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오래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나라 밖을 나서면 우린 모두 외국인이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는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전 지구인이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넓은 지구촌 어디에서든지 갈 수 있고, 거기서 발을 딛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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