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시아전략은 틀렸다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미국의 아시아전략은 틀렸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3. 31.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들이 간절히 열망했음에도 한번도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좋은 이웃’일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항상 부대끼는 친구에게서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처럼 국경을 맞대거나 인접한 국가들은 다투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최근 한·일 갈등이 격화하자 ‘먼 곳에 있는 친구’ 미국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한·일관계를 사실상 절단냈을 때 미국은 이례적으로 “실망스럽다”는 공식 반응을 내고 일본을 질책했다. 그러고는 한·일 양국에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미국은 지난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한자리에 모아 억지춘향식 3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미국의 조바심이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일 갈등은 항상 있어 왔지만 미국이 매번 이를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총리가 툭하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도 미국은 “일본 내부의 결정”이라며 수수방관했다. 그랬던 미국의 태도가 이번에 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미국이 세계의 성장동력이 된 아시아의 가치를 재발견했음을 의미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미국은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 투사하고 있는 이유다. 재정적자로 이를 혼자 감당하기 어렵게 된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을 활용하고 있다. 한·미·일의 협력이 미국에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3월18일 (추처: 경향DB)



미국의 이 같은 아시아 전략은 방향성에 문제가 있다.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가능한지, 중국을 경제·군사적으로 위축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의 부상 자체가 아니다. 법치·민주주의·인권 등의 분야에서 국제사회와 다른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당 독재국가가 덩치를 키워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이 될 경우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미국이 갖는 중국 위협론의 실체다.

중국을 봉쇄하는 것으로는 이런 위협을 해소할 수 없다. 중국이 국제사회와 같은 가치 체계를 공유하고 글로벌 이슈에 협력할 수 있는 나라가 됐을 때 위협이 사라진다. 따라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중국의 점진적 사회·정치적 변화 속에 중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는 길로 유도하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이 지역에 군사력이 아닌 인권·민주주의·통상·문화교류 등을 투사하는 쪽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일본의 군사적 존재감을 키워 아시아에서 활용하려는 방법론도 틀렸다.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미국의 지원 속에 군사력을 키우고 우경화되어 가는 모습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경험한 아시아 지역 동맹국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헤이그에서 억지로 한·일을 한자리에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이뤄지고 한·일관계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서로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다.

미국은 지금 한·미·일 정상회담 중재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면서 그동안 중단됐던 3국 안보협력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차질을 빚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울 기세다. 아베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왜 미국에 실망스러웠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오바마는 4월 말 한·일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오바마의 방문은 동북아시아에 민족주의와 군비경쟁을 유발하고 있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중국과의 협력이 왜 중요한지, 패망국 일본이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 평화헌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재확인해야 한다. 오바마가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지금의 전략기조를 강화하려 한다면 한국은 ‘먼 곳에서 온 친구’를 기쁘게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신모 정치부 차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