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과 남북대화는 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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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북핵과 남북대화는 별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7. 4.

2000년대 초반 북핵 외교가에서는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최소한 대화를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talking is better than not talking)”는 말이 유행했다. 북핵 문제에 당장 진전이 없더라도 북한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상호 이해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말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된다”가 대세다. 그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북한이 먼저 비핵화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5월 이지마 아사오 일본 내각관방참여를 평양에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유화공세를 펴고 있다. 중국에 특사도 보내고, 남측에 당국 간 대화를 제의했다. 또 미국에 고위급 대화를 거듭 제안하면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중국과 러시아에 잇달아 파견했다. 모든 6자회담 참가국을 상대로 전방위 대화 제의를 한 셈이다.


한·미는 북한의 이런 행보에 부정적이다.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과의 대화가 항상 만족할 만한 여건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각국의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대화 필요성이 제기됐고, 때로는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모이기도 했다.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으로 북한과 고위급 대화를 시작한 것도 북한의 진정성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다. 당시 천안함·연평도 사건의 여파로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자 미국은 한반도 주변에 가득찬 긴장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당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북한이 진지한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지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또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무망한 노릇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조만간 “북한의 의지를 탐색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또 한번 발표해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북·미 대화가 됐든 6자회담이 됐든, 성공 여부는 남북관계에 달려 있다. 한국 정부는 남북 간 대화가 없는 상태에서 북핵 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의 북·미 고위급 대화 제의가 나오자마자 미국 측에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과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 어떤 전략으로 대화를 할지가 관건이다. 미·중 모두의 지지를 받아냈다는 ‘신뢰 프로세스’도 아직은 모호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은 오바마에게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할 때 ‘북한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변화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국제사회가 단결해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주로 설명했다.



이처럼 신뢰 프로세스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실체와 이행 방안이 불분명한 추상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 신뢰 프로세스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원칙만은 지켜야 한다. 북핵 문제와 남북 대화를 강하게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북핵 문제 해결만을 내세워서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사안에서 시작해 금강산, 개성공단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시작한 것이 신뢰 프로세스 아닌가.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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