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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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미숙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0. 3.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지금 아시아에는 냉전의 그림자가 다시 어슬렁거리고 동중국해와 동북 아시아에는 분쟁과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세계는 중동 외에 또 하나의 화약고를 갖게 될 모양이다. 


혹자는 ‘화평’ 없이 ‘굴기’하는 중국이 세계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에 세계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의 불안정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아시아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시작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해·공군을 위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내용의 신안보 전략을 소개했다. 이어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지난 6월 해군 전력의 60%를 태평양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 회귀’ 또는 ‘재배치’로 불리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다. 


(경향신문DB)


미국이 아시아에 눈을 돌린 것은 거침없이 몸집을 키우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래 세계 경제의 성장동력으로서 아시아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실체는 모호하고 위험하며 비현실적이다. 


우선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지나치게 군사적인 측면에만 치중하고 있다. 미군의 전력 증강만 있을 뿐 이 지역에 대한 외교·통상의 강화나 인권·민주주의의 증진을 위한 비전과 계획이 없다. 왜 미국이 아시아를 중시해야 하는지, 궁극적 목표가 뭔지, 중국을 봉쇄해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 관리들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강변하는 헛수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미국이 뭐라고 말하든 중국은 ‘미국에게 당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봉쇄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진심이라면 미국은 대 중국, 대 아시아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또한 미국은 과거 냉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을 아시아 전략에 재활용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역사에 반성이 없는 일본을 핵심 파트너로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이 지금처럼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 각국에 중국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신냉전 질서를 조성한다면 아시아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한·일 갈등 탓에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핵심적 요소인 한·미·일 공조가 깨지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지금 한·일 갈등을 덮는다 해도 한·미·일 공조는 몇 걸음 못 가 다시 엎어지고 말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아시아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할 돈이 없다. 재정적자로 국방예산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미 의회가 이 계획을 승인하려면 행정부가 보다 구체적이고 세련되고 명확한 전략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지금 동북아에 일고 있는 민족주의, 군비경쟁, 냉전부활의 조짐은 상당 부분 잘못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다.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는 대선판의 먼지가 가라앉으면 미국은 아시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 상대이면서 동시에 국제질서 유지에 필요한 협력 파트너라는 것, 중국을 경제·군사적으로 위축시켜야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버리는 것, 그리고 미국이 아시아의 가치를 향유하려면 군사력 증강보다 외교·통상·문화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새로운 아시아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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