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독도문제에 우군은 없다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특파원칼럼]독도문제에 우군은 없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8. 23.

유신모 | 워싱턴


세계 현안을 모두 다루는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일본 기자들은 주로 브리핑 내용을 꼼꼼히 기록할 뿐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일간의 독도 갈등이 불거진 뒤 이들은 거의 매일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묻는다. “입장이 없다”는 국무부 대변인의 거듭된 답변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라는 점에서 미국의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또 미국이 심정적으로는 일본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일본은 언제나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아시아의 핵심적 전략 파트너였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패망시킨 뒤 다시 동맹으로 삼았다. 냉전시대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교두보였다. 일본이 독일과 달리 잘못을 뉘우치고 주변국에 사과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국제무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일 영토분쟁의 대상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서 미국은 일본을 지지한다. 지난해 미국은 “센카쿠 열도도 미·일방위조약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이 문제에 중립을 지킬 수 없는 이유는 1971년 오키나와 반환협정을 통해 센카쿠를 일본에 넘겨주고 실효지배하도록 해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아시아 개입정책을 펴고 있는 지금도 일본은 미국에 꼭 필요한 존재다. 미국은 잦은 정권교체, 경제적 침체,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으로 크게 위축된 일본이 지금보다 경제·외교·군사적으로 더 강해져야 자신들의 아시아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도 미국은 암묵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독도 문제에서 한국은 미국에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옹호할 리는 없다. 미국은 어떻게든 이 문제가 해결돼 한·미·일 3국이 협력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미국의 역사적 일본 편향을 감안하면 중립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미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도 영토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한국은 치밀한 전략을 갖고 혼자 힘으로 독도를 지켜야 한다. 


국민 80%가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하지만 국민정서와 국익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국민정서에만 맞춰 전략을 짜는 것은 직무유기다. 국민 감정에 영합하는 달콤한 정책 대신 고통스럽고 인기 없더라도 이성적이고 냉철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책무다. 


백번 양보해서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정치적 의도가 없는 단심(丹心)의 발로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 수중에 있는 섬에 문패를 달고 내 것이라고 소리쳐 독도가 분쟁 지역임을 스스로 널리 알리는 것은 하지하(下之下)의 책략이다.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출처: 경향DB)



일제의 잔혹함과 부도덕성을 알리고 자연스럽게 일본의 독도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려면 독도 문제는 덮고 군 위안부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영토분쟁에서 특정국을 지지할 나라는 없지만 식민지 부녀자를 강제로 동원해 군대의 성적 노예로 삼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참혹한 인권 유린에 침묵할 수 있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일본의 침략근성에 분노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하지만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몽고의 침략을 당한 중국 송나라의 충신이 남긴 명언이 있다. “비분강개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차라리 쉬우나 끝까지 참고 뜻을 이루는 것은 어렵다.(慷慨赴死易 從容就義難)”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