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분열시키는 ‘추악한’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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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국민 분열시키는 ‘추악한’ 미국 대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12.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과거 미국의 전당대회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당대회가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는 기적이다. 하긴 이번 전당대회를 ‘어글리’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미국 언론이 많은 것을 보면 과거에는 이번보다 신사적이었던 모양이다.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출정식인 올해 전당대회는 말의 성찬이었다.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를 포함해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온 연설자들은 거침없는 표현과 절묘한 비유를 세련된 제스처로 쏟아냈다.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듯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는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수억달러를 들인 ‘정치쇼’는 중립적이고 점잖은 표현으로 포장한 이전투구였다. “말을 교묘히 하고 낯빛을 화려하게 꾸민 사람 중에 어진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고 공자는 이미 갈파하지 않았던가. 미국을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 수 있는 비전과 진정성은 이들에게서 찾기 어려웠다. 


사실 오바마와 롬니는 모두 약점이 많은 후보다. 내세울 것이 없으니 상대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의 메시지는 “내가 최고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상대는 최악이다”라는 것으로 집약되고 말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가 권투 장갑을 끼고 다투는 모습의 인형 (경향신문DB)


공화당은 이번 대선의 콘셉트를 보수색 강화로 잡았다. 공화당은 전당대회에 맞춰 공개한 강령(플랫폼)에서 이민·동성결혼·낙태 등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1960년대를 방불케 하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이처럼 보수색을 강화한 공화당이 내세운 대선주자가 정통 보수주의자도 아닌 모르몬교 신자 롬니라는 사실은 모순이다. 


롬니는 당내 강경파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자신의 중도적 색깔을 버렸다. 공화당 강경파에 ‘납치된’ 중도 성향의 롬니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는 “오바마는 남의 탓만 하면서 4년만 더 시간을 주면 잘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4년 전보다 미국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일주일 뒤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역시 롬니에 대한 공격 일색이었다. 이미 고인이 된 에드워드 케네디가 롬니를 공박하는 영상까지 보여주고 연단에 오른 연사들은 누가 더 롬니를 아프게 공격할 수 있는지 경연을 펼쳤다. 오바마는 지난 4년간 자신에게 실망한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내세웠다. 노회한 클린턴은 화려한 언변으로 ‘피고 오바마’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오바마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는 이번 선거가 경제회복 실패의 책임을 묻는 국민소환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논점을 흐리기 위한 특유의 ‘편가르기’가 빛났다. 자신은 중산층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롬니를 그 반대편으로 밀어낸 뒤 유권자들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했다. 


올해 전당대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대신 앞으로 역사상 가장 추악한 대선 캠페인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동층이 적다. 미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됐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쇠퇴하는 미국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이념적 결집과 내부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의로 단결한 양쪽 진영은 이제 막판 네거티브 TV광고에 수억달러를 쏟아부을 채비를 하고 있다. 누가 이길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누가 이겨도 이제 미국에서 과거와 같은 초당적 합의 정치가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회복은 경제회복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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