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국가 미국, 보통국가 일본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보통국가 미국, 보통국가 일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

미·소 냉전이 시작되던 1940년대 후반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 국가안보팀 내의 논쟁거리였다. 2차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사령부(GHQ)의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의 재군비를 반대한 반면 트루먼 행정부와 국방부는 일본의 재군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1949년 3월 일본 방위를 위한 미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군대 창설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지었다.

종전 직후 A급 전범으로 수감된 와중에도 조만간 냉전이 시작되기만 하면 자신이 구제받을 것이라고 믿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예상이 적중했다. 한국전쟁 발발 2주일 만에 미국은 일본에 국가경찰 예비대 7만5000명과 해상보안청 요원 8000명을 증원할 권한을 부여한다고 통보했다. 국가경찰은 1954년 자위대가 됐다. 한국전쟁 중 체결된 대일 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조약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방지에 방점이 있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일본을 재건할까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프로젝트 1단계였다.

그것이 진행된 방식의 후과는 지금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일본사 연구 권위자인 존 다우어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올 초 아시아퍼시픽저널에 발표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글에서 동북아의 영토분쟁, 일본 제국주의 과거사 문제 등은 모두 냉전 초기 미국의 전후질서 재편 방식에 고약한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한·일 간 영토분쟁이나 과거사 문제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둘이 서로 잘 지내길 바란다고 객관적 입장을 취하는 태도는 한국으로서는 복장 터지는 일이다.

아베 ‘군국주의 야심’ 구체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결정을 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지켜온 평화주의는 아베가 추진해온 ‘보통국가화’ 정책에 자리를 내줬고,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성큼 다가갔다. 도쿄 _ 로이터연합뉴스, 뉴시스


자위대 창설 60년 만에 일본은 보통국가화 프로젝트 2단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9조 해석 변경은 일본 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은 일본 국내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쪽 편을 확실히 들어줬다. 미국은 지난해 미·일 안보협의회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논의를 환영한다고 밝힌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다.

미국이 최근 몇년 사이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지하는 데는 자기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미국의 대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미국 편인 일본이 ‘한 사람’ 몫을 제대로 하게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일본이 지난 60년간 침략전쟁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게다가 미국인들 중에는 미·일동맹이 원래부터 일방향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변호사인 티머시 카터는 “미·일 동맹관계가 우리가 일방적으로 지켜주기만 하고 우리가 공격받으면 일본이 도울 수 없는 관계였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으로선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언젠가는 허용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 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고노담화를 훼손하는 지금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제 코가 석자인 미국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연설에서 어지간해서는 해외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판 보통국가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보통국가 미국은 보통국가 일본을 필요로 한다. 몇십년 전 일어난 일본 제국주의의 반인도적 범죄 사실은 냉정히 말해 미국의 국가 정책 결정에 고려대상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당사국이었던 한국을 고려하지 않은 일본의 1단계 보통국가화가 그랬듯이 2단계 보통국가화 프로젝트가 몇십년 뒤 또 어떤 후과를 남길지는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시점 한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거대한 장기판에서 ‘졸(卒)’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