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방법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축구선수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방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2. 22.

박지성 골. 우린 얼마나 자주 인터넷 검색어 1위의 자리에서 이 어휘를 목격하는지. 박지성의 골은, 천안함이 가라앉아도, 형님예산·쪽지예산으로 온 나라가 부글거려도, 그 어떤 정국에서도 단숨에 1위로 점프할 수 있는 검색어 1위 전문 어휘다. 잘하는 축구선수가 종종 골을 성공시키는 일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의 골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보다, 우리의 영웅이 건재하다는 안도감을 주는 역할에 가깝다.

그 작은 안도감, 그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가 맨유에서 골을 하나 넣고, 연봉협상에서 좀더 유리한 고지, CF시장에서 좀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해서, 내 인생에 털끝만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충 알고 있지만 말이다.


박지성과 같은 팀 맨유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릭 칸토나. 5년 전 축구계를 떠나 영화배우, 감독, 화가, 사진작가, 빈민운동가로서의 분방한 삶을 누리는 중이다. 이 무궁무진한 변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불멸의 키커로 기억되는 칸토나가 최근 프랑스 사회를 제대로 놀라게 했다. “미친 듯한 금융자본주의가 우리 삶을 거덜내기 전에, 은행시스템을 붕괴시키자.” 그 방법으로 특정한 날짜에 은행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합법적으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추운 거리에 모여서 시위할 것도 없이, 간단하게 현재의 금융자본주의 시스템과 이 시스템을 호위하며 자기들끼리 챙겨먹는 집권층에 타격을 가할, 혁명적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순식간에 3만5000명이 그의 제안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고, 각 은행들은 물론 재무부장관, 각 정당 대표들이 걱정 어린 질책들을 쏟아냈다. NPA(반자본주의신당)만이 “매우 기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 생각에 동의할 사람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꺼내올 돈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평했다.


여론은 그의 은행 붕괴 공작의 성공을 예측하진 않았지만, 그의 제안이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는 데엔 광범위한 동의를 얻었다. 금융자본주의를 둘러싼 집권계급의 등골이 오싹해지는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곳 언론들은 이 사안을 민감하게 다뤘다.

“은행들은 우리 돈을 가지고 돈놀이를 하고, 우린 그들이 날린 돈을 계속 메워 준다. 이건 말도 안된다.” 세계경제를 돌아가며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칸토나는 이렇게 간단히 축약했고, “은행들은 우리 돈 가지고 노는데, 우리라고 은행들 가지고 놀지 말란 법 없지” 같은 맹랑한 사고를 시민들 사이에 스며들게 했다.

D데이였던 12월7일, 놀랄 만한 금융대란은 없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나왔던 제안이었으므로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사회적 파장은 만만치 않았음을, 이 제안을 정치·사회적으로 분석하는 여러 학자들의 기고문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이웃나라 영국에서도, 금융자본주의에 몰입하다 점점 깡통이 되어가는 국고를 채우려 대학등록금을 3배 인상하며, 학위장사에 나선 정부를 향해 청년들이 강력한 저항에 나섰다.
찰스 황태자 내외의 롤스로이스에 살짝 금이 가고, 내외가 깜짝 놀라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는데…. 시위대 모두 은행 가서, 각자 돈 찾아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최신 저항 노하우가 아직 전파되지 않은 듯.


공을 발로 걷어차 그물망을 흔들지 않고도, 축구선수가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방법. 여기 있었다.

반응형

댓글